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모음글 정리

신정일(우리땅걷기)대표님 글 모음 1 - 0. 책1

산중산담 2014. 4. 4. 17:52

 

5.0

“이 세상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명성이란 무엇인가?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릴파르처의 글이다.

 

6.0

“세 사람이 길을 갈 때, 그 중 한 사람이 길을 잘 못 든다면 그래도 목적지에 찾아갈 가능성은 남아 있다.

그러나 셋 중에서 둘이 길을 잘 못 드는 경우는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리 고생하여 보았자 목적지를 찾아갈 수 없을 것이다. 미혹한 자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 천하가 모두 미혹한데다 나 혼자만이 도를 구한다지만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장자> ‘천지天地’에 실린 글이다.

 

9.0

살아가는 것 자체가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인데,

살아가는 자체가 죽고 죽이는 전쟁터나 다름없어서 사는 것이 오히려 버거울 때가 더 많다.

이 모든 것이 인간 개개인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스로가 설정한 정의를 가지고,세상의 모든 것을 자로 재려는 욕망,

그런데 그 잣대가 저마다 다른 것이 항상 문제다.

 

10

시작이 있는 것은 반드시 끝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것도 사물의 성질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보편적인 법칙(通理)’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여름에는 사물이 성장한다고 말하지만 보리는 오히려 여름이 되면 시들어 버린다.

또 겨울이 되면 시든다고 하지만 대나무나 잣나무는 겨울에 오히려 무성해진다.

처음이 있는 것은 반드시 끝이 있다고 하지만 천지는 무궁하다.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고 하지만 거북이나 학은 장수한다.

양기가 왕성할 때에는 덥다,. 하지만 여름에 서늘한 날이 결코 없는 것은 아니다. 음기가 극에 달하면 춥다.

그렇다고 해서 한 겨울에 잠시 따뜻한 날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강물은 동쪽으로 흐르는 것이지만 북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도 적지 않다.

땅의 도는 지극히 고요한 것이지만 때로는 땅이 흔들리거나 무너지기도 한다.

물의 성질은 지극히 차가운 것이지만 더운 열기를 뿜는 온천도 있다.

불은 마땅히 뜨거운 것이지만 소구蕭丘에는 찬 기운을 뿜는 불꽃도 있다.

무거운 것은 가라앉는다고 하지만 남해에는 물 위에 떠있는 산이 있다.

가벼운 물건은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지만, 가벼운 새조차 띄우지 못하는 물도 있다.

이와 같이 사물의 온갖 차이로 인해 사물의 법칙을 하나로 단정해서 결정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갈홍의 <포박자> 중 <논선> 16-17에 실린 글이다.

 

11

결국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오랜 세월, 기다림 뒤에 오는 것이 다 허망한 것이라 할지라도

거부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인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는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하라.“ 이렇게 살아야겠다.

 

13

조금만 눈을 크게 뜨면 이 세상에 없는 것이 없다.

조금만 길을 나서면 세상에 볼만 한 것들이 많다.

아름다운 풍경, 아름다운 꽃, 아름다운 사람,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하나의 존재가 다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다 한계가 있는 것이라서 영원하지 않다는 그것이 문제다.

영원한 것은 없고 운명은 한 사람에게만 관대하지 않다.

단지 조금 이르거나 늦거나 그 차이일 뿐이다.

미인과 재원은 오래 살지 못한다는 그 말 또한 일리가 있다.

좋게 말하면 굵고 짧게 산 것이다. 오래 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14

나야 어디 내세울 만한 직책이 없어서 그런 면에선 자유로운 몸이지만 주고받는 것이 항상 문제다

남의 호의를 거절하기도 어렵지만 남의 호의를 사심 없이 받기도 어렵다.

안 주고 안 받는 것이 오늘날의 세상인심이다.

하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주는 것조차 안 받으면 그것도 역시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라서

이도 저도 못할 때가 많이 있을 것이다

 

16

“진실한 사랑은 순수하게 주는 것이며, 각자가 아직 줄 것이 있는 것에 대한 존중으로

남에게 자기를 바치는 것이다.” 라고 생텍쥐페리가 <성채>에서 말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옛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이 크고, 사랑이 얕아도 외로움은 크다고,

이래 저래 잠 못이루는 밤들이 많다.

 

17

“저 공자孔子같은 성인은 나이 예순이 될 때까지 예순 번이나 생각을 고쳤다고 하네.

처음 옳다고 믿었던 일도 뒤에 잘못임을 깨달아 고치며, 나이와 더불어 새로이 살아갔네.

지금 우리들이 옳다고 믿고 있는 일도 일찍이 공자가 그랬던 것처럼 역시 잘 못되어 있을 지도 모르네.

새삼스럽게 정의正義가 어떠니 이해利害가 어떠니, 떠들어대고,

무어가 좋으니, 나쁘니 하며 옥신각신하는 사람들의 의론은, 결국엔 입에 발린 소리에 불과하네.

그러나 무심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대립의식을 잃고 마네.

이래야만 만인이 이해할 수 있는 진리가 확립되는 것이네. 우리는 도저히 공자를 미치지는 못하네.“

<장자>의 ‘寓言‘에 실린 글이다.

 

18

푸르게 빛나던 하늘에 금세 검은 구름 밀려오고 비 내리다가 진눈깨비로 변하고

다시 함박눈이 되어 대지를 하얗게 물듯이 듯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

그 마음 속 길을 찾아 떠나고 또 떠나도 닿을 수 없다.

하지만, 하지만 하면서도 가고 또 가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난 길, 세상에서 가장 거기 어려운 길,

죽음이 손짓하는 날까지 걸어가야 할 바로 그 길이 흰 눈 속에 아스라하게 보이는 것 같다.

 

20

정직도 자기가 설정한 한도 내에서 정직이지, 세상의 잣대로 보아서 정직한 것은 아니고,

그 정직이라는 것조차도 자꾸 변하고 변하는 것이라서 정직한지, 아닌지를 분별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그 순간만 사람을 속이거나, 모면하면 아무도 모르고 지나갈 것 같지만, 세상이 어디 그렇게 단순한가

정직은 공인들이나 사회지도층들이 어느 시대나 지켜야할 가장 큰 덕목이다.

그런데 본인이나 단체의 이익만을 위해서 헌신짝처럼 던지고 살다가 자기가 쳐 놓은 올가미에 걸리는 것이 다반사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운명은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어서 돌고 돌아서 같은 자에게 계속해서 행운을 베풀지는 않는다.”

살아갈수록 옛 사람들에게 배우는 것이 더 많다.

 

22

그렇다. 모든 것은 마음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변화할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기 위해서는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한사코 길을 나선다. 그것이 초저녁이건, 새벽이건, 대낮이건,

그렇게 떠날 때가 인생에서 그나마 행복한 시간이다.

세월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붙잡아도 가는 것이다.

내가 그 풍경을 기다리고 있으면 죽는 날까지도 오지 않을 것이니까

나는 내 생이 다하는 날까지 떠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돌아온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눈앞에 어리는 것,

그것만이 내가 살아 있다는 징표가 아닐까

 

23

한 해가 거의 저물고, 그렇다고 내 놓을 것 별로 없이 가버린 시간 앞에서

자꾸만 초조해지고, 서두르는 마음의 바다에 쏜 살같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시간의 파도,

그와 같이 마음의 공허는 어딘가로 무작정 떠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에 틀어박혀 있다고 해도 풀릴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것이 바로 알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이 계절에 이를 때 깨닫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길은 멀고 몸은 쑤시는 겨울 밤, 기를 쓰고 찾아 헤매도 따사로운 집은 없다“

<유혹자의 일기>에 실려 있는 글과 같은 마음으로 찾아 헤매는 그리운 집,

그 집을 찾지 못하면 불안의 파도위에라도 둥지를 틀고 그렇지도 못하면 삭막하고, 어둔 겨울밤,

어딘가 이정표도 없이 한 없이 걸어가야 하리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불쑥 내가 가야할 길이 나타날 것인가

 

27

“여자는 자기 그림자를 보고도 질투를 한다는데, 남자들은 아내가 좋아하는 가수까지도 질투를 하네요.”

남녀 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동성 간의 관계에서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항상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멀리 있을 때에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가까이 있을수록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다.

그 관계가 어려워질수록 견지해야 할 자세가 성 프란체스코의 ‘애매한 경우에는 자유를’ 이라는 구절이 아닐까

 

32

계월이라는 기생이 이광덕李匡德을 위해 쓴 글인 <순행 오신 재상 이공을 이별함> 이라

는 글

“눈물 흐르는 눈으로 눈물 흐르는 눈을 보니

애끓는 이가 애끓는 이를 대하였네.

전에는 책 속에서나 무심히 보았던 일

오늘 첩의 몸에 닥칠 줄이야 어이 알았으리.“

 

33

“애태우는 근심은 흰 머리를 만든다.”는 영국 격언이 있고,

“근심 있는 사람아, 근심 있는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근심이 있는 사람에게 말하면 근심에 근심 다시 쌓이네.“

보우대사의 <태고화상어록> 잡화 삼매가에 실린 글이다.

“근심은 아름다움을 훔치는 도둑이다.”고,

해도 해도 쓸데없는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긍정적인 생각, 그 밖엔 없을 것이다.

“오래 엎드린 새는 반드시 높이 날고, 먼저 핀 꽃은 홀로 일찍 시든다.

이것을 알면 발을 헛디딜 근심도 없을 것이고, 조급한 마음은 사라지고 없다.‘ <채근담>에 실린 글이다.

일본에도 이런 속담이 있지 않은가.

”내년의 일을 말하면 귀신이 웃는다.“ 그래 지금 이 순간에만 충실하자,

 

34

사는 것이 버거울 때가 많이 있다.

그럴 때는 내가 조금 편하고자 어딘가 라도 기대고 싶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그래서 멈칫멈칫하다가 그만둔다.

내가 사는 인생을 내 마음대로 못하고 질질 끌려만 가는 것 같아 억울할 때

문득 생각나는 글이 있다.

짐 들어주는 자와 비스듬히 기대는 사람이랍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가는 이의 짐을 들어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남에게 당신 몫의 짐을 지우고 걱정 근심 끼치는 기대는 사람인가요“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엘리 휠러 월콕스의 글이다.

되도록 남에게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주는 삶을 살고자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는 것은

아직도 내 마음 공부의 깊이가 깊지 않는 탓이리라.

더구나 그 맑은 섬진강 길과 웅숭깊은 지리산 길을 이틀 동안이나 걷고 돌아왔는데도

마음이 맑지도, 가볍지도 않고 터질듯 무거운 것은 내 짐이 아직도 너무 무겁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쯤 내 마음이 나는 새의 깃털처럼 가벼워질 것인가

 

36

휴정의 종맥을 이은 중관中觀 해안海眼의 <대은암설大隱庵設>이라는 시다.

“누더기 하나로 떠돌아다니는 녀석 // 천지 사이에 자유로운 몸이다.

흰 구름으로 방을 만들고 // 붉은 나무로 좋은 이웃을 삼네.

차고 기우는 것에서 천도를 보고, // 겸양 삼아 귀신의 말을 듣노라.

지금부터 돌아갈 길이 있으니, // 무엇 때문에 행인行人에게 물으랴.“

 

42

기다림이 그리움으로 변하는 시간에는

갈잎을 흔드는 바람소리만 들려도 행여 그대인가 뒤돌아보고,

흐르는 강물소리만 들려도 가던 발길을 멈추는 것이지요,

술잔을 받아 놓고서, 입만 축이고 있다가 조금 늦어 돌아오는 길,

우뚝 선 나무들이 문득 그대인가 싶어서 한 참을 바라보다 돌아왔지요,

곧 이어서 시월이 가고 십일월의 초하루가 열릴 테지요, 더 황량한 바람이 부는,

그러다가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는 그 계절, 동짓달에는

무엇을 그리워 하며 가는 세월을 바라보아야 할런지요

 

43

영국의 시인 ‘존 키츠’는 ”이 세상이 눈물을 만들어내는 ‘골짜기‘가 아니라

 ’혼을 만들어내는 ‘골짜기다’ 고 말했는데, 달리 말하면 이 ‘세상’이 아니라

내 마음이 슬픔과 눈물을 만들어내는 ‘골짜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 해답을 나에게 제시한 글이 있다.

“상처라는 것이 없다면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당신에게 깨어진 가슴이 없다면 당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과거에 누구였는지 지금까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에드워드 올비 <여기에 관한 연구>의 일부분이다.

지금, 그래 바로 여기에 그 해답이 있다.

‘나는 괴롭다’에서 출발하자.

상처받고 뒤틀린 인생이 보이지 않는 그 ‘어느 곳’인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만이라도 행운이라 여기며, 가자, 다시 그 먼 길을,

'상처는 나의 힘'이라고 여기며 아픈 몸을 이끌고,

그렇게,

 

45

“저녁놀이 마을에 비치는데, // 이 시름을 누구에게 하소연할까.

길에는 사람의 발걸음도 끊어지고 // 가을바람만 들에 물결치네.“

어디 가을만 그럴까

곧 이어 이 땅에 눈이 내리면 마음은 그 차가움으로 더 내면 속으로 파고들 것이고,

그 때 나는 더 나그네가 되어 떠나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산엔 새도 날지 않고 // 길에는 사람의 발길이 끊어졌다.

배에 탄 늙은 어부가 // 홀로 강상에서 눈을 닦고 있다.“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이라는 시 의 전문이다.

 

47

“로댕은 명성을 얻기 전에 고독했다. 명성을 얻은 다음에는 더 더욱 고독했다.

왜냐하면 명성이란 바로 그의 주변에 밀어닥친 오해誤解의 총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명성이나 재부가 다 행복은 아니고 오히려 더 인간의 마음을 황폐화 시키며 헛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다 오해라는 말도 있지만,

그 오해를 통해서 이해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리라.

 

“쟌느는 늘 예전처럼 숨을 쉴 수 없는 것 같고, 지금은 더 고독하고 더 버림받고 더 몰락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매일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고 있었지만 이 이상한 욕구의 원인은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녀가 무의식중에 내뱉은 한마디가 자기가 불안해 있던 비밀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쟌느는 저녁을 들려고 앉으면서 말했다. ”오! 이처럼 바다가 보고 싶을까!“

바다를 그리워하면서도 까마득히 잊고 있던 쟌느가 어느 순간 그가 그리워 한 것을 생각해낸 것처럼

나의 설명할 수 없는 고독도 어느 날 갑자기 현실로 나타나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 있을까

 

52

저어기 우리의 꿈이 잠자던 곳도 // 저어기 호롱불 밝히던 곳도

저어기 어머님 새벽마다 밥 지으면서 //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물 훔치던 곳도

부서진 한 줌 흙으로 남아 // 따스한 햇살에 한 줌 흙이 되고 말았구나.

살아가는 것이 그리 대수라고 // 바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해마다 두어 번씩, // 바람처럼 왔다가 눈길만 주고 돌아가던 옛집,

지붕을 뒤덮은 풀이며 // 미세한 바람결에도 머리에 내려앉던 썩은 지푸라기가,

행여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 갈 길을 붙잡을세라 // 바쁘다고 돌아서던 그리운 옛집,

그 집터에는 그날의 꿈만 남아 있는데, // 햇살은 어찌 그리 찬연하게 빛나고 있던지,“

<그리운 옛집>이라는 제목으로 쓰여 진 그 글을 읽으며 아스라한 옛 기억들을 떠올린다.

 

55

중국 송(宋)나라 때의 시인인 소식(蘇軾)이 지은《제서림벽(題西林壁)》이라는 시가 있다.

그 시에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이라는 한 구절이 나온다. '여산의 참모습'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이 구절을 풀어 말하면 여산은 너무도 깊고 유원하여 그 참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이다.

"앞에서 보면 산줄기 옆에서 보면 봉우리(橫看成嶺側成峰),

멀리서 가까이서 높은 데서 낮은 데서 그 모습 제각각일세(遠近高低各不同).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함은(不識廬山眞面目),

단지 이 몸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네(只緣身在此山中)."

그 시에서 말한 것과 같이 백두대간 능선 속, 곧 산속으로 들어가면 길이나 나무 등, 산의 주변만 보지 산의 진면목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산림청의 세미나에서 발표한 것이 <백두대간 산촌 마실길>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인제에서 서쪽으로 돌아 지리산에 이르고 다시 거창 문경, 양양을 지나 고성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산자락을 따라 걷는

기나긴 여정을 따라가면 백두대간을 제대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 역시 그러하다. 외면만 가지고 사람의 참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일부분만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한다.

“풀빛이 멀리서는 보이더니 가까이 가니 도리어 없네.“

중국 당나라 때의 문장가인 한유韓愈의 글이고,

천천히 살펴보고 그 사람을 평가할 것,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견지해야 할 삶의 자세가 아닐까

 

56

아름다운 경치는 잘 쓴 한 권의 책과 같다.

바라보는 곳마다 무한한 상상의 원천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자연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이 단풍드는 이 땅의 가을 산천이다.

그 계절에 나는 그 단풍이 들기 전 그 빛 바래가는 나뭇잎에다, 흐르는 강물에다가

넘쳐 나오는 내 마음의 상념을 물감처럼 풀어놓는다.

아직은 남에게 보여줄 수가 없는 미완의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는 가을 산천

 

 

ㅎ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