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모음글 정리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 8 ~ 9

산중산담 2016. 6. 20. 08:54

 

 

8- 1.

비가 내리기도 하고, 바람 불고, 눈 내리다가 금세 멎기도 하는 그것이 바로 세상의 풍경이고,

구부러진 길, 오르막길, 가시밭길, 그러다 가끔씩 평탄한 길을  가다가 쉬고 가다가 묻고 그렇게 가는 것이 인생길이리라.

그런데, 우리는 너무 편하고 아름다운 길만 가고자 하는 것이 아닌지,

날이 추워지니 마음까지 추워서 그런가, 마음이 옛 추억처럼 무거워지는 겨울, 겨울이 자꾸 깊어만 간다.

 

 

8- 3.

나 역시 자연 중의 일부분이라서 그럴까? 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럽다

자연은 인간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고,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으면서 마음속에 스며드는 묘한 공부법을 가지고 있다.

피터 톰긴스, 크리스토퍼 버드의 <식물의 정신세계>에 실린 글의 일부분이다.

자연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진리를 보여준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공부,

그런 공부가 자연 속에서 저절로 되는 공부다.

 

 

8- 6.

그런데 어느 사이 세상이 부유해지면서(?) 넘쳐나는 물건 들 속에 양말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서부터 이런 풍경이 나타난 것이다.

짝을 못 찾고 다시 기억의 보자기 속에 담겨지는 짝 잃은 양말들, 인간 세상 풍경도 그러하리라. 서로 형제자매로 태어나 학교를 가고 직장을 다니고 뿔뿔이 흩어져 누군가를 만나 남편이나 아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일가를 이룬 채 아무 탈 없이 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다시 나뉘어 홀로 서 있는 나무들이나, 돌멩이처럼 혼자서 이 풍진세상을 떠돌기도 할 것이다.

이 아침녘에 양말 바구니에 짝을 찾은 양말을 담고서 짝을 찾지 못한 채 보자기에 담겨진 양말들을 넌지시 바라보며 씁쓸하면서도 허망한 생각에 잠기는 것은 비단 나뿐 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 찾는 것도 찾지 못하는 것도 좋은 일이리라. 추억이 추억일 때도 좋지만 기적처럼 현실이 되어 나타나는 것 역시 좋은 것과 같이,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진 그리움들이 짝 잃은 양말처럼 어느 후미진 곳에 숨어 있다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8- 10

길을 걷다가 보면 앞서간 사람이 나에게 풍경이 되는 줄도 모른 채 걸어가고

역시 뒤 따라오는 사람에게 내가 풍경이 되는 줄을 모르면서 걸어갈 때가 있다.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늘 그러하리라.

내가 당신의 꿈을 가끔씩 들여다보고 싶은 것처럼 당신도 나의 꿈을 들여다보고 싶지만,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

가능하다 할지라도 설령 들여다보아서 무엇을 알 수 있고, 변할 것이 무엇인가.

다만 꿈꿀 수 없는 것을 꿈꾸며 사는 것이 인생이고, 그게 행복이라면 행복인 것이 이 세상의 변할 수 없는 이치다.

 

 

8- 11

다시 펴드는 책이 <전도서>이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한 그대로이다.

떴다 지는 해는 다시 떴던 곳으로 숨 가삐 돌아가고.....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 도다.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다시 있을 것이요....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 하늘 아래서 하는 모든 일을 나는 보았노라. 그러나 모든 것은 헛되고 마음 아픈 것임을 나는 알았노라.”

 

 

8- 13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장애물을 만난다. 그 장애물의 대부분이 인간이고, 그 인간들에게 상처를 입는다.

그런데 상처를 주는 인간들 대부분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한 번 두 번 큰 상처를 입게 되면 사람들을 못 믿게 되고 고슴도치처럼 자기 자신 속으로만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기 자신에게조차 상처를 입게 되어 더욱 더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믿음이 곧 사랑인데 그 믿음이 사라지고 불신만이 팽배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만 더 달리 생각해보면 장애물은 인간을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8- 20

삶과 죽음으로 나누는 인생,   장자가 죽기 전 제자들이 후하게 장사를 지내겠다고 하자

나는 천지를 널로, 해와 달을 연벽連壁으로, 별들을 주기珠璣, 만물을 제물祭物로 삼을 것이니, 이 얼마나 큰 장구葬具인가.

 

 

 

8- 22

길을 나서는 순간, 나를 반기는 놀랄만한 것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돌멩이 하나,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에 스민 세월과 함축된 수많은 사상, 그러한 것들이 도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길 위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보행에는 내 생각들에 활력과 생기를 부여하는 그 무엇이 있다.

나는 한자리에 머물고 있으면 거의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내 몸이 움직이고 있어야 그 속에 내 정신이 담긴다.

나의 처지를 상기시키는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  그런 모든 것이 내 영혼을 청소해주고

내게 보다 크게 생각할 수 있는 대담성을 부여해주고 ..... 장 자크 루소의 글이다

천천히 걸으면 보이는 것들, 기적처럼 나타나  지친 내 영혼에 향기를 불어 넣어주는 수많은 것들이

길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어떤 특별한 일들이 길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8- 23

용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게 아니라 용감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정의가 무엇인지를 아는 게 아니라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8- 35

옛말에도 육체를 수고롭게 하여 쉬지 않으면 피로하고, 정신을 쓰면서 멈추지 않으면 지친다.

또 몸과 마음이 모두 피로하면 자지러진다.”고 했다.

물의 성질은 다른 물건이 뒤섞이지 않으면 맑고, 바람에 움직이지 않으면 수평을 이루며,

꽉 막히면 흐르지 않고 또한 맑을 수도 없다. 이것은 천지자연의 작용의 현상이다.

그런고로 옛말에도 순수하여 뒤섞이지 아니하고 고요하고 한결같아 변함이 없으며,

염담해서 작위 함이 없고, 움직여 천지자연의 운행에 따른다.”고 했는데 이것이 정신을 기르는 법이다.

(중략) <장자>의 말이다.

흐르는 물과 같이 모든 것을 받아들여 흘러야 하는데

 

 

8- 36

유격장에서 암벽을 타듯이 바닷가에 연한 바위 숲을 헤매다  결국 가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오랫동안 길에서 터득한 것은 가다가 돌아오는 일이 많은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논어>의 한 구절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를 비유하여

돌아가는 것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하면서 가다가 돌아오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 먼 길을 걸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밀고나가는 것, 그것이 올바른 삶의 자세가 아닐까?

 

 

 

8- 39

세상은 항상 불공평하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공평한 것들도 많다.

누구도 대신해서 살아 줄 수가 없듯이 누구를 대신해서 죽고 살 수도 없다.

 

 

8- 46

살다가 보면 돈은 그 때 그때의 수단이지 인생의 전체는 아니다. 특히 노년의 삶에서 더욱 그러하다.

노년을 공부한 전문가들은 마지막 10년을 행복하게 보내는 비결로 첫째 연골, 둘째 인간관계, 셋째 할 수 있는 일을 꼽았다.

다리가 튼튼해야 걸을 수 있고, 좋은 사람도 만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때 까지만 존재한다.” 사르트르의 말이 새삼 절실해지는 시절이 노년이다.

다리가 튼튼해지기 위해서는 부단히 걷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8- 58

길은 언제나 여러 갈래로 내 앞에 놓여 있다.이 길을 가도 되지만, 저 길을 가도 된다.

우리가 살면서 매일 부딪치는 일, 갈까 말까 망설일 때는 가야 한다.‘

할까 말까 망설일 때는 해야 한다살까 말까 망설일 때는 사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는 달리

두 갈래, 또는 서너 갈래로 길이 나뉘어 있을지라도 어느 길인가는 선택해야 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이라는 시 구절처럼 훗날 후회를 할지라도 가야 하는 길,

그 길을 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8- 66

다시 떠난다. 떠난다고 생각하니 내가 이 복잡다단한 세계에서 도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잠시 벗어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일말의 불안 내지는 찜찜함,

그것은 그렇게 떠나고 떠났음에도 정작 떠날 때는 항상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근심과 걱정이

단호히 떨치고 나설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곳으로 나가는데서 오는 설레임이다.

새로운 풍경을 갈구하는 나의 취향은 정말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다.

마치 새로운 미인을 보면 그 전의 연인은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바람난 애인 같지 않은가.

환상적인 장면을 막 보고 돌아섰는데도,

나는 다음에 올 경치에 다시 관심을 갖는다.

내게 행복은 항상 저 평원 너머에,

저 돌 방벽 뒤에 숨어 있는 것이고,

땅의 굴곡 속에, 강줄기가 바뀌는 곳에,

그리고 좁은 통로를 빠져 나온 바로 그곳 어딘가에 있다.

그 행복을 잡으려는 욕망에 이끌려 나는 시간을 잊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나는 걷는다.> 1 권에서 토로한 것과 같이

나 역시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새로운 길에 나설 것을 열망했고,

그 열망과 고난, 그리고 숱한 고통이

이 나라 이 땅을 걷도록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8- 67

잎은 많지만 뿌리는 하나 / 내 청춘의 거짓된 허구한 날을

햇빛 속에 잎과 꽃들을 흔들었지만 / 이제는 진실 속으로 이울어 들리.‘

예이츠의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오다>라는 시의 전문

 

 

 

8- 83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둬도 좋은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

어차피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다른 사람의 의견과 제안에는 반드시 뭔가 트집을 잡는 버릇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되도록 많이 나서지 말고 가만히 바라볼 것 애매한 경우에는 자유를이라는 말과 같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확실한 것 그리 많지 않고 애매한 것들이 태반이다.

갑갑하더라도 참견하지 말고, 가만히 관조할 것, 그것이 세상을 그나마 잘 사는 법이다.

 

 

 

8- 86

 

눈이 잘 보이는 것을 명이라고 하고, 입이 잘 맛보는 것을 총이라고 하며, 입이 잘 맛보는 것을 감이라 하며,

마음이 잘 아는 것을 지라 하고, 지혜가 잘 통하는 것을 덕이라 한다.

이와 같이 도통하기를 바라고 막히기를 바라지 않는다. 도가 막히면, 이를 인체에 비할 때 목이 막히는 것으로

목이 막힌 대로 그대로 있으면 호흡할 수가 없고 호흡할 수가 없으면 여러 가지 장애가 발생한다.

만물 중에 지혜를 가진 것들은 호흡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통발은 고기를 잡는 것으로 고기를 잡으면 그 발은 잊혀지고, 토끼 울무는 토끼를 잡는 것으로 토끼만 잡으면 잊혀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이란 사람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므로, 생각할 줄을 알면 말은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찌 하여 말을 잊은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하고 있을까?“

<장자> 외물에 실린 글이다.

 조금만 버리면 편하고 행복할 것인데, 그 조금 때문에 세상은 항상 소란하고 사람들도 말이 많다.

 

 

 

8- 93

한때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서 잊혀져 가던 옛길이 어느 순간 걷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유행하면서

다시금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돌아온 것은 순환하는 우주의 질서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자네는 쓸데없는 것을 말하고 있네.“

장자가 다음과 같이 답했다쓸데없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쓸데 있는 것을 아네.

 

 

8-95

흐르는 강물을 보면 알 수 있다.

쉴 새 없이 흐르고 흘러가는 강물, 어디 옛것이 있었던가?

새롭고 새로운 것이 시간이고 강물인데

 

8-98

세월은 물과 같이 흘렀어도 옛 사람들이 남긴 자취는 역사로 남아 가끔씩 정자를 찾는 사람들에게

나뭇잎 스치는 바람소리로 그날의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렇듯 역사의 현장에서는 수많은 옛 선인들을 만날 수 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