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모음글 정리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 6 ~ 7

산중산담 2014. 5. 6. 12:10

1

내가 걸어 온 길, 내가 걸어 갈길,   얼마쯤 걸어야 끝이 보일 것인가?

알지도 못하면서,    길의 도중에서 길의 마지막 순간을 그리는 것이 얼마나

무용한 일인가를 잘 안다.

그러나 잘 알면서도,   나의 길, 그 마지막 가는 길을 생각하는 것은

길은 항상 미로이며, 무언가 알지도 못하고 풀지도 못할

수수께끼와 같은 것을 품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길은 여럿이서 가는 길도 있지만 저마다 혼자서만 가야하는 길이 있다.

그것이 바로 <나의 길>이고

 

삶과 죽음, 동전의 양면과 같은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른데도

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문이 열리면 하나의 문이 닫히고

하지만 이래도 저래도 길을 통해서만

길에 이를 수 있다.

 

“삶의 길은 세상을 건너는 길속에 있다.(出世之道卽步世中)”라고

<채근담>에는 실려 있는데,

나의 길은 과연 어디로 이어질 것인지?

 

 

11

나는 내 마음속의 길을 오랫동안 걸었고, 그 길에서

수많은 사물과 사람들, 그리고 역사와 문화의 흔적들을 만났다.

나는 그 길에 서서 나 자신은 누구인가 시시때때로 물었고,

나 자신이 지켜야할 이치와 도덕들을 나에게 끊임없이 주입시키고자했다.

그러나 내게도 많은 모자람, 무지, 어떤 때는 황당함을 발견하고

씁쓰레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러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 나아지기를 갈망하곤 했다.

그 또한 나의 이룰 수 없는 꿈일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내가 이 生에서 중단 없이 추구해야할 사명일지도 모르겠다.

자유와, 자존, 사명과 숙명 사이에서 외롭고 쓸쓸히 걸어가야 할 길,

그 길이 나의 길이 아닐까?

 

19

속박도 어렵지만 자유는 더 어렵고,

그 자유를 제대로 누리며 사는 것은 더욱 더 어렵다;

왜냐하면 사회가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에 그렇다.

 

20

하루가 지나면 우리들의 생에 다시 계사년이라는 해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허전한 것이 아니라 가버린 시절, 아니 가버린 해에 대해 느끼는 아쉬움, 사사로운 내 잘못 그런 것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가버린 한 해를 회고하는 순간 항상 잘 살았던 것 보다 잘 못 산 것이 더 생각이 나는 것 역시 그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나 애착보다 조금씩, 조금씩 버려야 하는 그 마음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22

조선 오백년 사직을 지켰던 학문이 주자朱子가 창시한 <주자학朱子學>이다. 주자철학의 근본 주제는 ‘이理’이다.

그는 ‘천지만물의 생성은 ’이理‘와 ’기氣‘가 필요하지만, 이는 만물생성의 본원이며, 기는 만물을 구성하는 재료’로 보았다.

주자는 <사서삼경四書三經>중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새롭게 완성했다.

“지식은 나 자신에게 있다”(知者, 吾之所固有주)라고 갈파했던 주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는 것이 분명해질수록 행하는 것이 돈독해진다. 행하는 것이 돈독해질수록 아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또한 그는 “어떤 사람은 어려서부터 선하고 어떤 사람은 악한데, 이것은 기질이 그러한 것이다.” 라고 말했고,

“맑은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 되며, 탁한 사람은 우매한 사람이 된다.”고도 말했다.

 

세상에는 이치가 있고,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다. 마음과 이치는 둘이 아니다.(心卽理) 마음 있는 곳에 이치가 있고, 이치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마치 물이 있는 곳에 나무가 있고, 나무가 있는 곳에 물이 있듯이 마음이 있으면 으레 이치가 있게 마련이다.

마음에 있는 일이 내 일이요, 마음이 없으면 나도 없다. 마음이 곧 나다.”

육상산은 ‘진리란 누구나 알 수 있어야 하고,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야 한다(良知良能).“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을 ‘이간易簡’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주자는 임종을 앞두고 ”진리란 별 것이 아니다. 꾹 참고 파 들어가는 것뿐이다.“ 라고 하였다.

알 수도 없고, 이해도 안 되는 진리, 그 진리가 도처에 있다고도 하고, 아예 없는 것이라고도 하며 마음속에 있다고도 한다.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도 다른 진리, 과연 진리란 무엇인가?

 

23

“진리라는 것은 말할 수는 있지만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진리가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진리를 이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이치는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형상이라는 것들은 끊임없이 변해 가는데 그것 또한 진리라고 볼 수 있지요.

거울을 보면 내가 보입니까? 아니지요 거울에 비치는 내 그림자를 볼 수 있을 뿐입니다

 

24

강진의 무위사의 극락보전이나 모악산 자락의 귀신사의 대적광전. 예산의 수덕사 대웅전의 공통점은 맞배지붕이다.

그 건물들을 바라보면 간결하면서도 단순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복잡한 것으로 치장된 아름다움은 금세 질리는 편인데,

단순한 아름다움은 시간이 갈수록 마음에 다가와 잊혀 지지를 않는 것이다.

 

“사물의 본질은 단순하다. 지혜도 단순하다.

바로 이 두 가지. 단순한 본질과 단순한 지혜에서

사랑과 존경이 나온다. 모든 기교적인 것과 꾸미는 것을 삼가라.

단순함처럼 사람들 사이에 친밀함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람에게 또는 사물들에게 다가갈 때

사람들이나 사물들이 긴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26

“사람이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것은 네 가지 일 때문이다. 첫째는 장수, 둘째는 명예, 셋째는 지위, 넷째는 재물이다.

이 네 가지에 얽매인 사람은 귀신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며, 권세를 두려워하고 형벌을 두려워 한다.

이런 사람을 두고서 자연의 이치를 위반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죽음도 삶도 외부의 지배를 받는다  <열자>에 실린 글이다

 

27

어둠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밝은 햇빛으로 나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밝은 햇빛 속에서만 생활하는 사람들은 어둠에 익숙하지 않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연을 좋아한다.

그래서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득 안고 자연으로 들어가 자연 속에서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힌 여러 제 문제들을 풀어낸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책속에서 책으로,

그리하여 온갖 세상으로 들어가는 모든 통로를 책을 통해서만 찾을 뿐이다.

길에서 길을 찾다가 길을 잃고 헤매고

오랜 시간 길에서 헤매다가 길을 찾는 그 수고로움이여,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길을 가까스로 찾았을 때의 기쁨과 행복은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환희에 가까운 깨달음이나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을 가는 데 의심치 말 것, 숙명이라고 여기며 순응하면서 갈 것,

그래야 니체의 말대로 춤을 추면서 걸어갈 수 있는데, 그게 아직까지도 어렵다.

그래도 가야하는 길, 묵묵히 내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며 가리라는

이 마음은 슬픔인가? 기쁨인가?

 

28

“인간관계를 제외하고는 기쁨의 희망이란 없다.”  생텍쥐페리의 <바람과 모래와 별>이 문득 떠오릅니다.

사람만이 사람에게 희망이란 말이지요.

 

31

“항상 준비하지 않으면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거나 아주 중요한 시기에 그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 지상에는 지금밖에 없다.

지금을 잘 살지 않으면 미래도 과거도 무용지물이다. 

어디선가 들리는 저 소리,

“지금 이 순간을 붙잡아라. 삶은 매 순간 우리에게서 달아난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32

세상을 사는 것, 어떤 식으로 살든 다르지 않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태어나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살아진다는 것,

그 사이의 사람이 인생이다.

나는 인간은 여행을 통해서 세상을 배운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행을 통해서 사람들은 어떤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되는가? 

“지식을 얻으려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행의 방법을 터득하고 있어야 한다.

관찰을 하려면 보는 눈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알고 싶어 하는 대상으로 그 눈을 돌려야 한다.

여행이 책보다 가르쳐 주는 것이 더 적은사람도 많다. 그들은 생각하는 기술을 모르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 그들의 정신은 적어도 저자에 의해서 인도 되지만, 여행을 할 때는 그들은 스스로 볼 수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또 어떤 때는 알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알게 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의 목족은 전혀 다른 데 있으므로 안다는 데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정확히 보이는 일은 좀처럼 없다.

루소의 <에밀> 중에서 ‘여행에 대하여’에 실린 글이다.

 

35

공부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J. 하우먼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36

“고독은 산에 있지 않고, 거리에 있다.  한 사람의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인간의 ‘사이’에 있는 것이다.”

미키 키요시의 <인생론>에 실린 글처럼 도시는 큰 고독이라는 말이  어찌 그리도 잘 들어맞는 말인지,

 

37

지금의 이 시대에 어느 것이 옳은지를 제대로 말할 사람은 없을 듯 싶다.

이 밀도 옳은 것 같지만 돌아서면 아니고  저 말도 옳은 것 같지만 돌아서면 그 또 한 아니다.

옳고 그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내 이익이 옳은 것이고 나의 손해가 그른 것이라는 생각들만 팽배한 시대에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그렇다면 있음과 없음의 경계에는 무엇이 있을까?

버리지 못한 마음과 채우지 못한 마음들이  저마다 타는 갈증으로 목말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채운 자는 비었을 때의 일을 망각한 채 자만과 욕심으로 날을 새우고

채우지 못한 자는 닿을 수 없는 먼 하늘만 바라보며 한탄하고 있지 않을까?

이래저래 세상 때문에 재미도 있고 재미도 없다.   이것이 세상이라는 것처럼,

 

38

나는 부를 경멸하게 되었다. 그것은 부가 쓸데없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하잘 것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보았는가, 그 일련의 전시품은 아무리 천천히 하나하나 살펴보아도 불과 몇 시간 안에 다 지나갈 수 있지 않았는가?

만 하루를 채울 수도 없는 것으로 우리의 일생을 채울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그 재산이나 권력에서 자유로운가?

그렇게 갈망하지 않고 무시하고는 있지만, 가끔씩 그것이 조금은 필요하다고 여기며 살고 있다.

왜냐하면 나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이 들 때의 비애悲哀,   그것이 살아 있음의 징표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정말로 삶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몇 사람의 마음에 맞는 법,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  아쉬운 소리 안할 만큼의 재산, 지혜와 예지,

그런 것들이 아닐까?

 

39

남해에서 이틀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하동을 지나고 구례로 가는 길에

어둠이 내리면서 강은 겨울 강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강물에 살포시 내려앉는 붉은 노을빛   하루가 다하고 어둠이 내리는 것이

마치 세상이 다하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것과 같은

장엄함속에 떠오르던 시 한 편,  고은 시인의 <섬진강에서>에서였다

저 강물은 스스로 깊어지고 스스로 흘러서  새벽이 다할 쯤에는 남해바다로 들어가겠지.

세상이 다 하는 날까지 흐름을 그치지 않고  흐르고 흘러갈 강물과 같이

우리들 역시 흐르고 흐르다가 어느 날 문득   화엄의 바다로 들어가겠지.

 

55

몸이 따뜻해져서 기쁜 것이 아니라, 내가 기쁜 마음으로 지내기 때문에 몸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일이 잘 풀려서 기쁜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일이 잘 풀린 것이다.” 라고

만약 당신이 기쁨을 찾아서 길을 떠날 예정이라면, 그때는 꼭 기쁨을 안고 길을 떠나는 것이 좋다.“

알랭의 <행복론>에 실린 글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길 위에 서 있었고,길은 나에게 숙명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나에게 부여된 사명 같은 길,그 길에서 나는 나의 그 철부지 같은 그 무모한 시도를 후회한 적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부턴가, 니체의 운명애처럼 길을 사랑하고 감내하는 법을 배웠다.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하직할 이 세상에서 길은 나에게 포근한 요람이며, 안식처인 것을,

 

57

엠페도클레스가 다른 사람의 지성에 의심을 품었다. 그는 환한 대낮에 등불을 켜고 돌아다니자 사람들이 물었고,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정신이 똑 바로 박힌 사람을 찾고 있다.”

어쩌면 인간들은 모두가 이 세상에 태어나 등불을 들고 사람을 찾는 나그네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세상을 다 돌아다녀도 스스로가 찾고자 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목표를 조금 낮추고 서로 마음을 나누고 기대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간들의 삶이다.

 

58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 슬픔도 끝나는 법, 섣불리 희망을 걸면 슬픔만 커질 뿐이오.

지나간 불행을 슬퍼하는 것은 새 불행을 초래하는 것,화를 만나 항거할 길이 없을 때 참으면 그 악행도 조소거리로 변하오.

도둑을 맞아도 미소를 짓는 사람은 오히려 도둑한테서 무엇인가를 뺏는 법이오.”

셰익스피어도 <오델로> 1막 3장에서 나에게 충고를 보내는데,

나는 가끔씩 도지는 그 우울감에 나 자신을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는 것은 아직도 세상을 더 살아야 하는 그 이유일 것이다.

 

64

시월의 마지막 날 인천으로 가는 길  추수가 거의 끝난 들판이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느꼈다.

풍요롭던 계절이 지난 들판을 바라보며 새삼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 것은

생성과 소멸의 거듭되는 그 비밀을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고 오는 것들이 그 전환기에 선 들녘 그것들이 왜 그리도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는지,

 

그 아름다움이 비록 내일 오게 되어  잠을 깬 뒤에 기억에만 남아 있는

한낱 꿈속의 빈 말 같다고 해도.“

그것이 한 낮의 비몽사몽 같은 아름다움이라고 할지라도  아니 신기루거나 무지개처럼 사라져 버린다 할지라도

좋은 일들은 좋은 사람들로부터라는 속담처럼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고  아름다운 일들은 아름다운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믿어도 될 날이 있을까?

 

68

살아가며 깨닫는 것은  인생이 별 것 없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시시각각 무언지 모를 불안감과 조바심으로 보내고,

금세 평온한 듯싶다가도, 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 갇힌 듯

불안과 조바심의 감옥에 갇히고 만다.

길지 않은 인생을 인간은 무엇에 홀려 사는 것일까?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그 모든 것들에 매달려 스스로의 의지대로 살지 못했음을 깨달아도

지나간 나날은 지난 일일 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원하는 삶을 후회 없이 사는 것, 쉬운 일인 듯싶지만 그게 어렵다.

 

71

여름 한철 그 무성하게 자라는 풀을 베곤 또 베었다. 그래서 매일 숫돌로 낫을 갈았다.

새파랗게 날이 서도록 갈고 또 갈았다. 물에 담갔다가 갈고 다시 뒤집어 갈았다.

다시 물에 담그고 세워보면 날선 낫, 이만하면 됐다 싶은, 그 순간까지가 낫을 가는 과정이었다.

 

날 선 낫으로 한 손에 잡은 풀 더미를 대고 베면 일렬로 쓰러지던 그 풀들.

그때 나는 베어져 쓰러지는 풀들과 베어도, 베어도 돋아나는 풀들의 생리를 보며

사람의 삶도 그렇게 계속된다는 것을 알았다.

지고 이기는 싸움이란 원래 없는 것인데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규정을 만들어서 졌다느니,

혹은 이겼다느니 우길 뿐일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누구나 잠시 머무르다가 사라지는 것뿐이다.

 

72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라는 시詩가 있다.

때늦은 후회를 할 때 더욱 그렇다.

세상의 모든 것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

그런데 그 가는 도중이 항상 문제다

강물이 흐르듯 흘러가야 하는데,

이리 막히고 저리 막히면서 이러 저런 일이 벌어진다.

가끔씩 오판을 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74

말이 되는듯 싶지만 말이 안 되는 대화가 다시 생각해보면 심오한 문답일 때가 있다.
일종의 선문답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가끔은 서늘한 공기가 흐를 때도 있고

따스한 온기가 흐를 때도 있다.
이해도 할 수 없고.

이해도 되지 않는 게 세상 살아가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일 때가 있다.
문득. 갑자기. 불쑥 이렇게 진리가 오고. 그 진리가 가버린다.

오긴 왔는데. 왔는지도 모른 채 문득 보내버리고 후회하는 마음이여.
그대에게 묻노니
그대 마음 속 단풍은 언제 물드는가?

 75

같은 것 같지만 틀리고, 틀린 것 같지만 같은 것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알 수도 없고, 가르쳐 줄 수도 없는,

 그래서 어렵고도 어려운 것이 바로 삶이지 않을까?

 

79

나는 충분한, 아주 충분한 외톨이였다.

살아내는 것만도 버거운 어머니가 그나마 나를 가장 관심 있는 눈길로 바라보았을 뿐,

아버지도 할머니도 고모나 삼촌, 작은아버지 내외도 그저 한 아이가 자기들 곁에 있다는 것을 느껴서

 식사 때는 밥을 같이 먹었을 뿐이었다

 

91

세상 사람들은 비가 오면 ”날씨가 나쁘다“고 말하고,비가 그치면 “날씨가 좋아졌다.” 고 한다.

계속 해만 쪼이면 “가뭄이 든다.”고 하고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났다.”고 소란을 피운다.

그러나 우주는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의 본체에서 보면,소나기도 태풍도, 홍수도, 가뭄도 모두 자연의 현상일 뿐

거기에는 선도 악도 없다.우주의 절대적인 지리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날마다 참 좋은 날이다.“

이러한 진리를 잘 알면서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이  뭇 중생이다.

아서라. 말아라. 그냥 두어라.하면서도 이렇게 저렇게 노심초사하는 이생生에서의 삶, 가끔씩 스스로가 가여워 서글퍼진다.

특히 어느 계절보다 가을이 그런 것은 떨어지는 나뭇잎 탓인가?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억새 탓인가?

 

 

7- 1.

집에 있어도 길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길에 있어도 집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집이 길이고, 길이 집이라는 말인데,

길에서 길을 묻다가문득 집이 그리워지는 것은

이나 고향이 그리움의 원천이기 때문일 것이다.

 

7- 5.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어느 것 하나 공평하지 않고 불공평한 것, 같지만

공평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하며, 갈 때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구했다고 말한 선지자들도 세상을 다 점령할 것처럼 설치던 영웅들도

한줌의 흙이 되어 사라져 가고, 그 허상들만 남아 있는데,

후세의 사람들이 그 허상을 믿고 혹은 그 허상들을 팔아서 잘 살고 있다.

 

돈에는 더 많은 돈 이외에는 친구가 없다는 러시아 속담처럼

 

 

7- 6.

신기루 같고, 허깨비 같고, 꿈같고, 구름으로 만든 성곽 같고, 본성은 없으면서,

단지 그럴 듯하게 보일 뿐, 모든 것이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하나니

맑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이 해맑은 호수에 비치는 듯하지만 달은 저 호수에 다다른 적 없느니라.

음악, 소리, 그리고 흐느낌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메아리 같음을, 그러나 메아리에는 아무런 멜로디가 없노라. 

 

 

 

7- 11.

동학에 입도한 뒤부터 몇 십 년 동안 나라 곳곳의 250여 곳을 숨어 다니며 동학을 포교했던 사람이 최시형이었다

그는 어느 지역에 도착하건 새끼를 꼬거나 짚신을 삼았고, 새끼를 꼴 짚이 남아 있지 않을 때는 다시 풀어서 새끼를 꼬거나 짚신을 삼았다.

제자들이 좀 쉬시지 않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몸을 움직이십니까물으면

한울님이 쉬지 않는데 사람이 한울님이 주는 밥을 먹으면서 손을 놀린다면 한울님이 노하신다고 말했다고 한다.

 

 

 

7- 16 

 

나무 숲속에 있으면  크고 작은 나무들이 다 평화로워 보이고

그 아래 움직이는 모든 곤충이나 벌레들 역시 한가롭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매 순간이 전쟁이고 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어느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전쟁터가 바로 삶이지요,

그곳에서 수많은 사물들이 생과 사를 넘나들고 사는 것이  바로 이 지구이고 우주입니다.

마음 속 역시 그렇지요. 매 순간 순간마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것,

 

 

7- 22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의 각 단계는 뚜렷하지 않고, 주제넘게 자신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자연은 우리가 찾을 때 발견되지만 우리의 주의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자연은 말없이 공감해주는 친구와 같다.

그 친구와 함께 걷고 말할 때에는 걷고 있는 장소와 관계없는 대화를 나누어야 할 중압감을 전혀 느낄 필요가 없다.

자연스럽게 침묵하면서 고독이 주는 유용함을 대부분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7- 27

길에서 길을 걷다가 길을 잃고 길을 찾느라고 허둥지둥 할 때가 있다.

아니, 그런 때가 있는 것이 아니고 부지기수다. 그 때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지만

길을 찾는 순간, 내쉬는 안도의 한숨 뒤에 따라오는 희열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지나고 보면 길을 잃음으로 인해서 얻는 것이 더 많은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지도에 길이 없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고 뻥 뚫린 안전한 길만을 택한다

길은 여러 갈래다. 그 중 어떤 길을 가건, 결국 그 자신의 운명을 사는 것은 마찬가지다.

얼마나 더 많은 세상의 풍파를 맛보며 사느냐,

아님 평온한 나날 속에서 일상적인 행복을 추구하며 사느냐는

저마다에게 달려 있는 것이리라. 행복도 불행도 마찬가지, 저마다의 잣대가 다른 것처럼

저마다의 의지와 뜻대로 산다면 다 넘어가고 넘어갈 것이지만

누군가를, 아니 무언가에 의지하다가 보면 내 삶과는 무관한 상태로 흘러가는 것은 아닐런지,

하여간 누가 뭐래도 나는 길은 잃을수록 좋다.“ 는 말이 너무 좋다.

길을 잃고 또 잃다가 보면 어느 날 문득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내 눈앞에 무지개처럼 나타나지 않을까? 

 

 

 

7- 46

어제는 꿈에 지나지 않으며 내일은 예감일 뿐

그러나 충실하게 지낸 오늘은

모든 어제를 행복과 추억으로 바꾸고

모든 내일을 희망에 찬 지도로 만든다.

그러니 눈을 뜨자. 내일을 향하여!  이것이 새벽을 맞은 인사다.“

인도 희곡작가인 칼리다사의 <새벽을 맞은 인사>라는 글이다.

 

 

7- 47

難難爾難我難하고,(난난이 난아난)                         어렵고 어렵도다 너도 어렵고, 나도 어렵도다.

我留難爾送難이로다.(아류난 이송난)                      나는 머물기 어렵고, 너는 보내기 어렵도다.

南向爾隨難 北方我別難(남향이수난 북방아별난)      너는 남쪽으로 따라가기 어렵고, 나는 북방을 떠나기 어렵다

塞外書寄難 空山夢尋難(새외서기난 공산몽심난)      길이 멀어 글로서 소식전하기 어렵고 명월공산 꿈속에서 서로 만나기 어렵도다.長思念一忘難 一杯訣此酒難(장사념일망난 일배결차주난)  

                                                                           오랫동안 사모하던 생각을 단번에 잊기 어렵고,이 한잔 술로 결별하기가 어렵도다.

爾能琪歌聲不咽難하고,(이능기가성 불인난)            너의 옥 같은 노래 소리 목메지 않기 어렵고

誰云 蜀道上天難이련가!                                         나는 울음을 참을 수 있지만 눈물 글썽이지 않기 어렵도다.

我能禁泣 眼無淚難이로다.(아능금읍 안무누난)        (수운촉도 상천난)누가 말했던가! 촉나라 길에서 하늘을 보기가 어렵다고,

不如今日 一時難이니 又難(불여금일 일시난 우난)    오늘 이 순간의 어려움만 같지 않을 것이니 매우 어렵도다.

                양녕대군이 써내려간 <八難詩.(팔난시)>였다.

 

 

7- 50

꽃잎이 피는 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   그리고 연이어 들리는 꽃잎이 지는 소리,

꽃잎이 떨어져 내리는 그 소리에 가슴이 미어져 내리는 소리,

모든 것이 소리 때문에 벌어지는 온갖 풍경들이다.

알고 보면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우주이고, 그 우주가 내는 소리인 것을

귀 기울여 들어라. 그런 다음 네 심장이 뛰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라. 네 발자국이 대지 위에 내는 소리를 기울여라.

이 대지는 커다란 북이다. 너는 그 북소리를 잘 내고 있느냐.” 아베나키족 작가인 부르차크의 글이다

 

 

7- 52

최초의 날과 최후의 날 사이에 뻗어 있는 이 인생이라는 기간은, 다양하게 변화하는 불확실한 것이네.

만약 그 기간을 고통스럽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린이에게 있어서도 길고, 세월은 화살 같다고 보면 노인에게도 짧은 것이라네

봄이 그 화려함을 유감없이 발산하는 시간에  삶이란 원래 덧없는 것이라는 것과   오고 가는 것의 순리를 생각하는 마음속으로

꽃잎이 피는 소리, 꽃잎이 지는 소리가 교차되어 지나간다.   봄꽃이 피고 지는 한밤에

 

 

7- 59

일은 어긋나기만 하고  막힌 방에 있으면 한숨만 절로 나오는 그런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 세상에 사는 많은 이들이  나처럼 , 아니 나보다 더 고통스런 시절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하면

그래도 인생을 살아볼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다시금 인생을 점검하고 새로운 꿈을 꾸는 것,

그것이 진정한 옛 사람과의 대화가 아닐까.

밤이 깊어야 새벽이 오고 여명이 오는 것이  우주의 변하지 않는 이치인 것을, .

 

 

7- 62

그대 비단옷 아끼지 말고 그대 젊은 날 꽃다운 시절을 아끼게나.

꺾을만한 꽃 있으면 당장 꺾으시게. 꽃 질 때 기다렸다. 빈 가지 꺾지 말게.“

무명씨의 시 한 편이다.

내일 꽃 보러 간다고 하지 말고 오늘 당장 떠나야 하는데, 아니, 지금 주저치 말고 떠나야 하는데

왜 그리 못 가게 붙잡는 것들이 그리도 많은지,     하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그 또한 다른 누구나 무엇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에 붙잡혀 그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7- 75

살아 있다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행복이 아니라 고역이다. 그런데도 그 삶을 포기하거나 관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최선의 활로를 찾아 세상의 모든 것을 경험하면서 헤매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 활로를 찾고 못 찾고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끊임없이 가고 또 가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 길 가는 나그네 같다.”고 노래한 덕천가강의 말이 문득 생각 키우는 밤,

얼마나 걸어야 모든 것 내려놓을 종점에 도착할 수 있을까? 

 

 

7- 76.

남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으면 환영은 받지 못하더라도 냉대는 안 받는다.

비싼 술값이야 안 마시면 남의 일일 뿐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세상을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다

 

 

7- 78.

그 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가뭄에 콩 나듯 있고, 소가 닭 보듯 바라보는 나이든 사람들 몇몇,

가까이 있는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가까이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도 흔치 않다.

“등잔 밑이 어둡다” 는 속담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가 가고 없거나 그 사물이 사라졌을 때에야 그것의 진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보물은 바로 눈앞에 있는데, 먼 곳에서 희망처럼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 슬픈 마음들이여,

 

 

 

7- 82.

도보답사를 떠날 적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먼 길을 하염없이 걸어가길 바라지만

이 생각 저 생각에 마음이 산란해져  내가 의도한 걷기를 제대로 못할 때가 많다.

생각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또 다른 생각, 명상도 아니고 잡념도 아닌 그 생각의 끝자락에서

나는 또 무엇을 갈망하는가?

 

 

 

7- 83.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여행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집‘이라고 규정지은 ’곳‘도 엄밀한 의미에서 여행지이고,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 역시 여행지에서 만나는 도반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살아가는 도중에 수없는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며 어떤 경이로움이나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에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을 것이다. 그 순간 인간은 지금까지의 삶에서는 느끼지 못한 아주 다른 세계에 진입하는 것이다.

 

 

 

7- 84.

부처님도 다음과 같이 말했지 않은가?

 “태어난 것은 죽게 되고 모인 것은 흩어지고 축적된 것은 소모되고 쌓아올린 것은 무너지고 높이 올라간 것은 떨어진다.“

 우리가 실제로 지닐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이 순간뿐이다. 우리의 모든 욕심은 부질없는 것이고 헛된 것이다.

 “우리의 존재는 가을 구름처럼 덧없다. 존재의 삶과 죽음은 마치 춤동작을 보는 것과 같다.

삶은 하늘에서 번쩍이는 번갯불처럼 잠깐이며, 깎아지른 산에서 흘러내리는 급류와 같다.

 

 

 

7- 91.

 

수운은 말했다. “흙이 똥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오곡이 풍성하게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 뒤를 이어서 화엄 적 후천개벽사상을 설파한 증산 강일순은 “선천시대는 양陽의 시대이고

후천시대는 음陰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말 한 뒤, 후천세계에는 여자를 대장부大丈夫라고 부르게 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로서는 꿈도 꾸지 못한 여자들이 이 세상을 주도하는 음의 세상이 온 것만은 사실이다

 

 

 

7- 95

 

봄이 온다고 생각하니, 꿈처럼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이 무슨 얄궂은 심사랴.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에는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도중道中에서 만나를 지고,

 

꿈길따라 그 님을 만나러 가니 길 떠났네. 그 님은 나를 찾으러

밤마다 어긋나는 꿈일 양이면 같이 떠나 노중路中에서 만나를 지고.“

역시 김억金億이 번역한 황진이의 시 <꿈>이다.

 

가끔씩 기적처럼 이국에서도 만나는 사람의 인연이 한 하늘 아래에서도 한 평생 만나지 못하기도 하는 것,

한 순간에 어긋나는 길이라서 그러는 것을, 그게 사람의 인연이리라.

길에서 만나 길에서 헤어지는 사람의 생애, 다시 꽃 피는 봄에는 어떤 길을 걸으며 추억들을 반추할까?

 

 

 

7- 97

거울 속에 비친 사물,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그 사물을 두고도 느끼는 것은 저마다 다 다르다.

그래서 세네카는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물방울은 하나하나의 거울이다.” 

그 많은 물방울들이 다 다른 형태의 거울이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인가?

다시 거울 앞에선 나에게 쇼펜하우어가 속삭이는 소리 들린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내부에 존재하는 거울을 통해서 자기의 모습을 비춰본다.”

그렇다. 그 말이 맞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가?

 

 

 

 

 

 

ㅗㅗㅗ

ㅗ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