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군주와 치적군주라는 양면성을 가진 수양대군
13.05.19
말티재(37도로)
'말’은 ‘높다’의 고어로 ‘말재’는 ‘높은고개’를 뜻한다고도 하고
조선 세조대왕께서 속리산에 오실때에는 급경사지로 가마 이동이 어렵다하여 말로 바꾸어타고 고개를 넘고나서
내속리면 갈목리 부락에서부터 다시 연(임금이 타는 가마) 으로 바꾸어 탔다고 하여 말티고개라 부르게도 되었다
어린 단종을 폐위시키고
조선 건국이념으로 삼았던 유교의 윤리에 반했던 세조가
불교에 기대어
자신의 합리화를 위한 장으로 만들고자 했던
속리산과 오대산
구비구비 12구비를 힘들게
자신의 오욕을 씻으려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됐던지
그 힘든여정을 해야만 했던 세조의 흐르는 땀을
조금이나마 씻어 주었을
말티재
말티재를 넘으면 속리산에 이르는 길에
세조의 몸부림의 흔적이 남아 있다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만큼 평생을 정통성 논란의 정점에 있던 세조가
속리산을 찾은 것은
속리산을 쿠테타 합리화를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속리산에 남아 있는
정이품송 설화는 자신의 등극을 하늘의 뜻으로 미화한 것이고
법주사에서 오르는 길에 있는
목욕소는 자신의 집권은 부처의 뜻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속리산의
문장대 또한 같은 맥락으로 볼 때,
유교의 정통성에 반한 세조이고 보면 불교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초보산꾼 多 小
'산행기 > 山中山談' 카테고리의 다른 글
4구간에 만난 삼면봉(525)의 의미 (0) | 2014.07.05 |
---|---|
동학교도들의 보은집회의 보은땅을 걷는 두번째 (0) | 2014.07.05 |
한남금북정맥 출발을 축하하며 붙이는 글 (0) | 2014.07.05 |
民學會 조지용선생 추모비 (0) | 2014.07.05 |
한남금북정맥을 시작하며 - 1구간 (0) | 2014.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