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2

나 점점 더 작아지리라.

산중산담 2016. 7. 19. 08:33

 

나 점점 더 작아지리라.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아는 것이 가능할까?

한 사람이 한 사람의 마음을 알고

그 사람의 삶의 자세를 안다는 것이 가능할까?

쉽지 않다. 아니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숫제 알 수가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 마음을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체, 이렇게 저렇게 추정하고

이런 저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삶의 자세를 논한 글 한 편이 있다.

 

야누흐가 잠시 어떤 예기치 못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지켜 본

나이 든 여자가 젊은 여자에게 경멸하는 눈치를 보이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기 저 사름을 봐! 얼마나 뻔뻔한 놈인지 벌써 늙은 술고래처럼 고주망태가 되었군, 정말 돼지 같은 놈이야! 저 따위 녀석이 나중에 뭐가 될까?”

그렇게 당한 야누흐가 돌아와 카프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여자에게 호통을 치고 욕을 퍼부었어야 했는데. 그러기는커녕 한 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비참한 병약자에 불과합니다.”

그런 말 말아요! 당신은 침묵 속에 힘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군요. 공격은 그저 속임수, 술책에 지나지 않아요. 이 속임수나 술책으로 인간들은 보통 자신과 세계 앞에서 오직 이 약점만을 감추려고 하죠. 사실 영속적인 힘은 오직 인내에서 생기는 법이에요. 병약자만이 참을성이 없고, 뻔뻔하죠. 이 때문에 병약자는 인간의 품위를 벗어버리게 되죠.”

카프카의 다음과 같은 말이 더 가슴을 파고드는 글이다.

인간들이 서로 교류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아주 오래 된 오류에요.

그로 인해 야기 되는 고통만이 항상 새로운 거죠.“

 

그러면서 카프카는 야누흐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건넸다.

 

나 점점 더 작아지리라.

지상에서 가장 작은 자가 될 때까지

이른 아침, 여름날 풀밭에서

나 가장 작은 꽃을 향해 손을 내밀고

속삭이면서 내 얼굴을 그 꽃에 숨기리라.

너 갓난아이야. 신도 옷도 걸치지 않은,

하늘은 네 위에 당신의 손을 의지하시네.

찬란한 이슬 한 방울로

무너지지 않도록.

그분의 거대한 건축물이.“

체코 시인 이르지 볼커(jiri w olker)의 포코라(겸손. pokora)

 

시군요.” 나는 속삭였다.

내 말에 그는 말했다.

네 시예요. 우정과 사랑이라는 단어의 옷을 입은 진실이죠. 우리 중에 누구든 가장 헝클어진 엉겅퀴든 가장 우아한 종려나무든 모든 것이 거대한 건축물, 우리 세계의 거대한 건축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 머리 위에 있는 우주 공간을 떠받치고 있어요. 우리는 사물들 너머를 보아야 해요. 그러면 사물들과 더욱 가까워질지도 몰라요. 오늘 거리에서 있었던 사건은 생각하지 말아요. 그 여자는 잘못 생각한 거예요. 그녀는 겉모습을 보고 절대로 인상과 실제를 구별할 수 없어요. 그것은 결점이에요. 그 여자는 가련하죠. 그녀의 감정은 신경질적이죠. 아주 사소한 일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겠어요.”

그는 내 앞에 있는 잡지 위에 문진처럼 놓인 내 손을 부드럽게 잡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인상에서 인식에 이르는 길은 종종 아주 힘들고 아득히 멀죠.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은 단지 허약한 방랑자에 불과하죠. 만약 그들이 벽을 향해 그러듯이 우리를 향해 비틀거리고 온다면, 우리는 그들을 용서해야만 해요?”

구스타프 야누흐의 <카프카와의 대화>에 실린 글 한 편이다.

 

겉모습을 보고 절대로 인상과 실제를 구별할 수 없다.’

몇 십 년을 살아도 모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어떻게 처음 본 사람, 며칠, 혹은 몇 달, 몇 년 만나고 산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그냥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애매한 것은 자유라는 것을 체감하며

그래도 견지해야 할 자세,

사물들 너머를 바라보며 살아야 할,’ 것이

우리들의 삶의 자세가 아닐까?

 

때론

저렇게 조용히 내리는 장마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점점 작아지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생,

 

병신년 유월 스무나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