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2

편지가 세월 속에서 진화했다.

산중산담 2016. 11. 30. 19:25

 

편지가 세월 속에서 진화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새벽,

이 세상에 어쩌면 나 밖에 없을 것 같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하루가 열리는 중

열려진 창문 너머로 문득 한 비에서 외로운 등대불이 켜지듯

불이 켜진다. 지금 저렇게 불을 켜고 일어난 사람은 누구일까?

이런 때가 글을 쓰는 시간이고, 이런 시간에 나는

대상도 없는 편지를 쓰고는 했다. ‘편지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며 설레는 그 편지를 두고 옛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펼쳤을까?

 

편지는 존경스럽다. 편지는 무한히 용감하고, 쓸쓸하며, 자포자기적이다.

편지가 없다면 인생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 것이다.

다과회에 오세요. 정찬에 오세요. 이야기의 내막은 무엇인가요?

소식 들으셨어요. 이곳에서의 생활은 재미있습니다.

무희들(...)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쓰러지지 않게 떠받쳐주는 것들이다.

이것들이 우리의 나날을 연결시켜주고

인생을 완전한 원으로 만들어준다.“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에 실린 글이다.

그렇다. 말로는 차마 할 수 없는 것을

편지라는 이름을 빌어 용감하게 쓸 수가 있고,

더 용감한 것은, 내 마음만 허락한다면 언제라도 써서 보낼 수 있는 것이 편지다.

나에게 곧 편지를 써주게. 나는 자네의 순수한 소리를 필요로 하네.

친구 사이의 영혼은, 대화 속에 성립되는 사상과 편지는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네.”

180211월에 휠덜린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다.

 

가장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쓸 수가 있고,

용감하게, 아니 자포자기적 심정으로 보낼 수도 있는 편지는

쓰는 그 자체도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리움이 넘칠 때 받아서

그 편지의 겉봉을 뜯을 때의 그 두근거리는 가슴의 설레임이

그렇게 절실할 때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편지는 존경스럽고 전화는 용감하다.

왜냐하면 인생이라는 여행은 그 본질이 고독한 것인데,

만약에 우리가 쪽지 편지나 전화와 같은 매체에 의해서

결속되어 함께 간다면, ‘누가 아는가?’

우리는 가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는지.”

버지나아 울프의 <파도>에 실린 글이다.

 

그런 추억들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아파트 출입구에 있는 우편함을 가끔씩 들여다본다.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 쓰고 행여 가다가 열릴세라.

여러 번 편지봉투를 여미고 또 여며서 보낸 편지는

어딜 보아도 없고, 고지서와 간행물들만 가끔씩 눈에 띈다.

 

편지는 이미 이 지상에서 모습을 달리해서 허공을 날아다닌다.

이메일로, 카톡으로, 페이스북으로,

나는 이 가을에 어떤 형태의 편지를 쓰고

어떤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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