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든 타의든 저마다 태어나서 저마다 살아간다.
그 삶의 과정에서 저마다 잘하는 것이 있고 못하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이 많은 사람은
세상을 사는 것이 수월하지만, 잘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항상 삶이 고달프고 그래서 가슴 한 귀퉁이가 항상 싸하다고 할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잘하는 것은 몇 가지 안 되고
못하는 것만 많은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핀잔을 받는 것 중 하나가
젓가락질을 못하는 것이다.
남들은 다 잘하는데, 왜 그렇게 엉성하게 하면서 남의 눈을 성가시게 하는지
“아직도 젓가락질을 못하네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예 못합니다. 어릴 적에 젓가락질을 가르치는 학원을 다니지 못해서 그러는지”
지금이라도 그런 학원이 있다면 다녔으면 좋으련만, 이미 늦어도 한참을 늦었다.
어디 그뿐인가? 소풍 때 보물찾기 증 한 번도 찾지 못했던 사람이 나였고,
구슬치기나, 자치기, 딱지치기 등 어느 한 가지도 잘하는 것이 없었다.
더더구나 삶에서 아주 중요한 것, 아부는 아닐지라도 남의 비윗살이 좋지도 못하고, 아부는 꿈도 못 꾸고, 남을 칭찬도 잘 못하며 살았던 사람이 나였다.
항상 자동차 운전도 못하고 오토바이도,
심지어 자전거도 못타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여러 가지 못하는 것이 많아서 불편하고 불편했던 시절이 군 생활이었고
그 때의 추억을 회상해서 쓴 기록이
<홀로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에 실린 글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조직생활에 맞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군대체질이 아니거나 조직생활이 몸에 배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군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사격, 수류탄 투척, 그리고 태권도를 잘 하지 못했다. M 16 소총을 열 발 쏘면 일곱 발은 맞아야 합격이다. 그런데, 잘 하면 두세 발 맞았기 때문에 사격훈련을 마치면 몇 시간이고 기합을 받는 것이 정해진 코스였다.
그런 내가 한 번은 10발 중 7발을 맞춘 적이 있었다. 사격을 잘했던 친구들은 그날따라 불합격으로 우르르 기합을 받았는데 말이다.
“야, 짬밥을 오래 먹다가 보니, 사격도 가능한 것이구나.”했다.
하지만 다음에 사격을 했더니, 웬걸, 다시 두 발만 맞은 것이었다. “사실 하루 종일 활을 쏘다가 보면 언젠가는 과녁에 적중하는 수도 있다.”는 키케로의 말을 간과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7발이나 맞추었을까?’ 생각해 보니 그날 친구들이 내 목표물을 겨냥해 사격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제대하기 전까지 사격시간만 돌아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보초를 나가는 것이 내 임무였다. 그래서 자의건 타의건 군대 생활 삼년 동안 사격은 단 한 번밖에 합격하지 못하는 전대미문의 큰 기록을 세우고 군대를 제대했다.
사격만 못한 것이 아니다. 수류탄 투척 시간만 오면 나는 항상 좌불안석이 되기 마련이었다. 수류탄은 아무리 못나가도 25m이상을 던져야 한다. 그런데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서 던져도 12m만 나가는 것이었다.
“야, 이 새끼야, 너 때문에 아군들이 자폭하겠다.” 고함 소리에 내가 놀라던 시절이 그 시절이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운동신경이 둔해선지, 태권도 역시 못하기는 매일반이었다. 물론 기본은 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겨우 가는 길만 터득했지 하나도 힘이 안 들어간 태권도를 한 것이었다.
“야, 그게 춤이지, 태권도냐. 너한테 누가 맞아죽겠냐?”
그래도 잘 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선착순 구보, 그것을 터득한 것은 신병훈련소였다.
내가 본래 기초체력이 튼튼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선착순을 하게 되면 처음에 죽기 살기로 뛰어서 5위 안에 드는 것이었다. 처음에 안 되면 한나절 동안, 뛰어야 했다.
군대도 결국 요령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여간 군대가 체질이 아닌 내가 어떻게 그 시절을 버티고 제대했는지……“.
그래서 그랬을까. 내 마음 속에는 항상 조태일 시인의
<국토> 중 한편의 시가 늘 남아 있었다.
“나는 늘 홀로였다. 싸움은 많았지만 승리는 늘 남의 것이고,
남는 파배는 늘 내 것이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젓가락질을 못해서 밥을 못 먹었는가? 아니다.
젓가락질을 못했어도 음식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인생 자체가 서툴면 서툰 대로, 익숙해지면 익숙한 대로 살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말했다.
“바보는 남이 슬퍼하는 눈치를 보고(즉 남이 슬프고,
침울한 얼굴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을 교정한다.” 고,
잘하는 것이 별로 없이 못하는 것만 많은 사람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것 역시 나에게 부과된 운명이자 숙명이리라.
내 인생에서 바뀌어 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은
훨덜린의 다음과 같은 경구이다.
“내가 이해하는 것은 저절로 피어나는 것뿐
내가 이해 못하는 것은 정신이 사유하는 것“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2016년 8월 9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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