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2

내가 세상의 삶 속에서 잘 못하는 것들,

산중산담 2016. 11. 30. 19:28

 

내가 세상의 삶 속에서 잘 못하는 것들,

 

 

자의든 타의든 저마다 태어나서 저마다 살아간다.

그 삶의 과정에서 저마다 잘하는 것이 있고 못하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이 많은 사람은

세상을 사는 것이 수월하지만, 잘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항상 삶이 고달프고 그래서 가슴 한 귀퉁이가 항상 싸하다고 할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잘하는 것은 몇 가지 안 되고

못하는 것만 많은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핀잔을 받는 것 중 하나가

젓가락질을 못하는 것이다.

남들은 다 잘하는데, 왜 그렇게 엉성하게 하면서 남의 눈을 성가시게 하는지

아직도 젓가락질을 못하네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예 못합니다. 어릴 적에 젓가락질을 가르치는 학원을 다니지 못해서 그러는지

지금이라도 그런 학원이 있다면 다녔으면 좋으련만, 이미 늦어도 한참을 늦었다.

어디 그뿐인가? 소풍 때 보물찾기 증 한 번도 찾지 못했던 사람이 나였고,

구슬치기나, 자치기, 딱지치기 등 어느 한 가지도 잘하는 것이 없었다.

더더구나 삶에서 아주 중요한 것, 아부는 아닐지라도 남의 비윗살이 좋지도 못하고, 아부는 꿈도 못 꾸고, 남을 칭찬도 잘 못하며 살았던 사람이 나였다.

항상 자동차 운전도 못하고 오토바이도,

심지어 자전거도 못타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여러 가지 못하는 것이 많아서 불편하고 불편했던 시절이 군 생활이었고

그 때의 추억을 회상해서 쓴 기록이

<홀로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에 실린 글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조직생활에 맞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군대체질이 아니거나 조직생활이 몸에 배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군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사격, 수류탄 투척, 그리고 태권도를 잘 하지 못했다. M 16 소총을 열 발 쏘면 일곱 발은 맞아야 합격이다. 그런데, 잘 하면 두세 발 맞았기 때문에 사격훈련을 마치면 몇 시간이고 기합을 받는 것이 정해진 코스였다.

그런 내가 한 번은 10발 중 7발을 맞춘 적이 있었다. 사격을 잘했던 친구들은 그날따라 불합격으로 우르르 기합을 받았는데 말이다.

, 짬밥을 오래 먹다가 보니, 사격도 가능한 것이구나.”했다.

하지만 다음에 사격을 했더니, 웬걸, 다시 두 발만 맞은 것이었다. “사실 하루 종일 활을 쏘다가 보면 언젠가는 과녁에 적중하는 수도 있다.”는 키케로의 말을 간과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7발이나 맞추었을까?’ 생각해 보니 그날 친구들이 내 목표물을 겨냥해 사격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제대하기 전까지 사격시간만 돌아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보초를 나가는 것이 내 임무였다. 그래서 자의건 타의건 군대 생활 삼년 동안 사격은 단 한 번밖에 합격하지 못하는 전대미문의 큰 기록을 세우고 군대를 제대했다.

사격만 못한 것이 아니다. 수류탄 투척 시간만 오면 나는 항상 좌불안석이 되기 마련이었다. 수류탄은 아무리 못나가도 25m이상을 던져야 한다. 그런데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서 던져도 12m만 나가는 것이었다.

, 이 새끼야, 너 때문에 아군들이 자폭하겠다.” 고함 소리에 내가 놀라던 시절이 그 시절이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운동신경이 둔해선지, 태권도 역시 못하기는 매일반이었다. 물론 기본은 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겨우 가는 길만 터득했지 하나도 힘이 안 들어간 태권도를 한 것이었다.

, 그게 춤이지, 태권도냐. 너한테 누가 맞아죽겠냐?”

그래도 잘 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선착순 구보, 그것을 터득한 것은 신병훈련소였다.

내가 본래 기초체력이 튼튼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선착순을 하게 되면 처음에 죽기 살기로 뛰어서 5위 안에 드는 것이었다. 처음에 안 되면 한나절 동안, 뛰어야 했다.

군대도 결국 요령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여간 군대가 체질이 아닌 내가 어떻게 그 시절을 버티고 제대했는지…….

 

 

그래서 그랬을까. 내 마음 속에는 항상 조태일 시인의

<국토> 중 한편의 시가 늘 남아 있었다.

 

나는 늘 홀로였다. 싸움은 많았지만 승리는 늘 남의 것이고,

남는 파배는 늘 내 것이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젓가락질을 못해서 밥을 못 먹었는가? 아니다.

젓가락질을 못했어도 음식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인생 자체가 서툴면 서툰 대로, 익숙해지면 익숙한 대로 살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말했다.

바보는 남이 슬퍼하는 눈치를 보고(즉 남이 슬프고,

침울한 얼굴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을 교정한다.” ,

잘하는 것이 별로 없이 못하는 것만 많은 사람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것 역시 나에게 부과된 운명이자 숙명이리라.

내 인생에서 바뀌어 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은

훨덜린의 다음과 같은 경구이다.

 

내가 이해하는 것은 저절로 피어나는 것뿐

내가 이해 못하는 것은 정신이 사유하는 것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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