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3

지난 시절에 쓴 몇 편의 글,

산중산담 2016. 11. 30. 20:21

 

지난 시절에 쓴 몇 편의 글,

 

 

못 믿어

 

지금은 내가

두 발로 딛고 선 땅도

못 믿어

굴러도 꺼지지 않는 사실 마저

못 믿어

 

가슴까지

빨갛게 붙은

꿈속에까지 따라오는

어쩔 수 없는 압류딱지의

, 다가서는 그 날,

빗 잔치의 향연,

팔려가 버릴 정신의 쓰라림이

울컥 목젖까지 치밀어.

 

손짓해오는 너의 손을

단호히 뿌리치고

돌아서지 못하는

이 어설픈 삶에 대한 사랑,

 

지금은 내가

조각조각 부서져 죽으리라.

정해진 운명마저

못 믿어.

타는 햇살마저

침묵한 어둠마저

허우적대는

이 참혹한 시간마저

못 믿어.

 

85. 11. 14

 

겨울 편지 1

 

한 겨울인데도

여간해서 눈은 내리지 않습니다.

을씨년스런 11월의 비처럼

비는 왜 그리 줄 지어 내려쌓는지,

여기저기서

눈을 기다리는 하염없는 소문과 낱말들이

떠돌다가 사라집니다.

어쩌면 시야 속에 사라진 눈들이

모두가 기다림 마저 잊어버리고 눈감을 때

소록소록 내릴지도 모릅니다.

사랑처럼 설움처럼

그렇게 내릴지도 모릅니다.“

 

86 12, 26.

 

파도

 

눈앞에 선 듯 그대 보이네.

잠 못 들고 부르는 그리운 이름

살아 이렇듯 보고픈 마음인데,

죽어 얼마나 절절한 사랑이랴.

한 가슴 가득

파도 소리로 달려와서

밤이 새도 돌아가지 않는

그대여

87, 9.9,

 

-법정에서-

어떤 판결

 

물으면 묻는 대로만 말하고

그 이상 딴 말은 하지 마시요

아시겠지요?

1에다 1 더하면

2가 되지요

2에다 2를 더하면

4가 되지요

당신은 당신의 죄를 알지요?

아닙니다.’ 라는 말이나

덧붙일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그렇지만이나 저어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상 끝입니다.

돌아가십시오.

이것이 인생,

이것이 운명이다.

 

19856.25

 

그리움

 

누구일까

문 열면

보이지 않는

 

무엇일까

귀 기울이면

들리지  않는

 

어디서 왔는가?

물어도

대답이 없는

 

잡으려

손 저어도

잡히지 않는

 

언제나

서녘 하늘에

타오르는 노을

 

85. 6.5

 

한 밤에

 

지금껏

겨우

눈뜬 채

살아 있구나.

 

85. 12.3

 

잠에서 깨어나 잠은 다시 안 들고

삼십 여년의 세월 저편에 쓴

몇 편의 글을 꺼내어 다시 읽습니다.

신기합니다.

그때 내 마음을 다시 꺼내어 회상하는 것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변했고, 지금의 내 속에 그 때의 내가

있기는 있는 걸까요?

 

20161031일 마지막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