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적으면 본래의 마음을 보존할 수 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일을 많이 벌였다.
되는 일도 있었지만 되지 않는 일도 더러 있었다.
그 원인을 살펴보니 사사로운 마음이 없이 하는 일은 잘 되었지만
사사로운 마음을 가지고 한 일은 되지 않았다.
물론 그것 역시 별 다르게 하는 나에게 국한 된 일일 수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욕심을 부리면 되지 않는 것이 나의 경우다.
‘욕심’ 그 ‘욕심’어떻게 조절하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설문청薛文淸이 말하기를, ‘욕심이 없으면 일이 없고, 일이 없으면 마음은 곧 맑을 것이다.‘ 하였다. 이것은 마음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또 말하기를, ’욕심이 있으면 남이 그 속으로 들어올 수 있지만, 오직 욕심이 없으면 저들이 먼저 들어올 틈이 없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교제(接物)를 말한 것이다, 그 말이 진실로 좋다.
나는 말한다. 욕심이란 것은 반드시 무엇을 즐겨하는 욕심만을 말한 것이 아니다. 마음에 생각하고 영위營爲하는 것이 있음은 모두 욕심이다. 욕심이 적으면 본래의 마음을 보존할 수 있고. 본심이 보존되면 욕심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 유도부에 실린 글이다.
처음의 마음을 가지고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 뒤를 이어 다시 말한다.
“여자呂子가 말하기를, ‘ 천하가 모두 형체 있는 도적은 두려워할 줄 알면서, 형체 없는 도적은 두려워 할 줄을 알지 못한다. 욕심이 사람에게 도적질함이 전쟁보다 더 심하다.”
나는 말한다. 형체 있는 도적은 밖에서 도적질하지만, 형체 없는 도적은 사람 속에서 도적질하는 것이다. 사람이 적어도 안과 밖의 구분을 안다면, 그가 두려워하여 그것을 막는 데에 반드시 지극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보이는 도둑보다 보이지 않는 도적이 더 무섭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그 욕심을 욕심이라고 여기지 않는
그 마음이 더 무서운 것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잣대로 재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욕심이 하늘을 찌르고, 그 욕심의 천정이 허물어져서
압사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너무도 많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을 소 닭 보듯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기니
그러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나 역시 가끔 이익과는 상관도 없는 일에 쓸데없는 욕심을 부려
이도저도 못할 때가 더러 있다.
내 딴에는 세상에 이로운 일이라 여기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여길 때의 괴리감,
내 생각이 이제 세월의 녹이 슬어서 이 ‘급변하는 현재’를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은 아닌지,
세상 사람들의 삶의 이치를 살피고, 내 마음을 살피고,
그래서 세상의 이치에 따라서 사는 것,
그게 슬프지만 살아가야 할 삶의 자세姿勢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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