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을 다시 걷고 돌아온 새벽에
나라 안을 흐르는 강, 그중에서도 이름이 가장 아름다운 금강을
세 번째로 걷고 돌아온 밤 내내 나는 다시
금강을 다시 걷는 꿈을 꾸었다.
세 번 가지고는 모자란 그 무엇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두고 온 그 무엇이 나를 불러일으킨 것일까?
천천히 걷는 그 길이 어디 한 군데 낯익은 곳이 없이 낯설기만 한 곳들,
꿈과 현실은 그처럼 차이가 있는 것일까?
세상은 어디 한 군데 성한 데가 없이 소란스러운데,
한가하게 아니면 하염없이 강을 따라 걷는 나그네.
이래도 세상은 온전한 걸까?
하면서 걸었던 이 나라 이 땅의 강,
낙동강을 세 번, 한강을 네 번, 영산강을 두 번,
섬진강을 네 번, 그렇게 걷고 또 걸었는데도
강은 걸을 때마다 새롭게 나를 맞이하고, 나 역시 강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고 새로운 힘을 부여받는다.
이름이 나라 안의 강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금강錦江,
곧 비단 강을 한 발 한 발 걷고 나서 뒤돌아보면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가장 멀리 올라간 가지 끝자락에서
밑 둥을 무서움도 없이 내려왔음을 안다.
강물에 마음이 홀린 사람이 강을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을 ‘유流’라 하고
강물이 마음이 홀린 사람이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을 ‘연連’이라고 한다는데,
내 영혼은 항상 강물을 이리저리 오르내리는 ‘유연流連’일지도 모르겠다.
한 그루 나무와 같은 강, 그 중에서도 비단 강을 두고
군산이 고향인 채만식은 <탁류>의 서두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금강...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등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 가지고는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 직할 것이다.
저 준험한 소백산맥이 제주도를 건너보고 뜀을 뛸 듯이, 전라도의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우뚝... 높이 솟구친 갈재(노령)와 지리산의 산협 물을 받아 가지고 장수로 진안으로 무주로 이렇게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놈이 영동 근처에서 다시 추풍령(秋風嶺)과 속리산의 물까지 받으면서 서북으로 좌향坐向을 돌려 충청 좌우도의 접경을 흘러간다... 부여를 한 바퀴 휙 돌려다 가는 남으로 꺾여 놀뫼(논산(論山)) 강경에까지 들이 닫는다.
여기까지가 백마강이라고, 이를테면 금강의 색동이다... 여자로 치면 흐린 세태에 찌들지 않은 처녀 적이라고 하겠다. 백마강은 공주 곰나루(웅진(雄鎭))에서부터 시작하여 백제 흥망의 꿈 자취를 더듬어 흐른다. 풍월도 좋거니와 물도 맑다. 그러나 그것도 부여 전후가 한참이자. 강경에 다다르면 장꾼들의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에 고요하던 수면의 꿈은 깨어진다. 물은 탁하다. 예서부터 옳게 금강이다 .이렇게 애두르고 휘몰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 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시가지:市街地)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채만식은 그의 소설 <탁류>에서 금강을 두고
‘눈물의 강’이라고 명명하였는데, 지도를 보면 강을 알 수 있다.
한 그루 나무와 같은 것이 바로 강이라는 것을,
섬진강과 금강을 주제로 걷다가 보니 한 해가 그새 마무리 되고 있다.
2017년에 걸어야 할 길은 ‘해파랑길’이다.
2007년에 우리 땅 걷기 도반들과 함께 걷고서 <동해바닷가 길을 걷다>라는
책을 펴 낸 뒤 문화체육관광부에 ‘산티아고’에 버금가는 길, 그리고
대체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최장거리 도보답사 길을 만들자고 제안하여 만들어진 오륙도에서 고성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이
우리 땅 도반들을 기다리고 있다.
2017년 2월 넷째 주부터 걷게 될 그 ‘해파랑길’은 삼일포와 총석정
원산의 명사십리, 칠보산을 지나고 두만강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 길을 같이 걸어갈 도반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마음으로 동행하고
어떤 놀라운 일들이 그 길 구비 구비마다 펼쳐질 것인지,
지금 이 새벽부터 설레는 것은 아직도 내게 꿈이 많다는 것인지,
함께했던 모든 도반들, 그리고 함께 할 모든 도반들에게 감사와 함께
행운을 전합니다. 2016년 11월 28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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