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우리들의 인연
지난 세월과 지난 일 년을 회고해보니
참으로 다사다난했습니다.
수많은 일들이 지나갔고, 수많은 곳들을 돌아다녔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 중 가장 첫머리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우리 땅 걷기 도반들입니다.
길 도道자에 짝 반伴인 ‘도반, 말 그대로
길에서 만난 친구이자 인생의 길동무입니다.
그렇게 만나서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한 달에 두 서 너 번, 아니 너 댓 번 만나는 인연이
보통이고, 더구나 한 달에 너 닷새는 같인 집에서 잠을 자는 인연이
예사로운 인연입니까?
동시대에,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여행길에 나서서 똑 같은 경치를 같이 보고,
생각을 공유하며, 같이 먹고 같이 잠을 자는 것을 사흘을 같이하면
삼년三年을 같이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 년 사이에 사오십 년을 같이 사는 것이나 다름없는 이 인연,
모두가 이 세상에서 지극한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인연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
일의 내력, 또는 이유‘라고 어학사전에 실려 있는 인연의 소중함을
연암 박지원은 다음과 같은 편지글로 남겼습니다.
“공교롭고도 오묘하지요. 이다지도 인연이 딱 들어맞다니. 누가 그런 기회를 만들었을까요? 그대가 나보다 먼저 태어나지 않고, 내가 그대보다 늦게 태어나지 않아, 한 세상을 살게 되었지요. 또 그대가 얼굴에 칼자국 내는 흉노족이 아니요, 내가 이마에 문신하는 남만南蠻 사람이 아니라 한 나라에 같이 태어났지요.
그대가 남쪽에 살지 않고, 내가 북쪽에 살지 않아 한 마을에 같이 살고, 그대가 무인이 아니고, 내가 농사꾼이 아니라 함께 선비가 되었지요. 이야말로 크나큰 인연이요. 크나큰 만남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구차하게 해야 하거나, 억지로 상대의 행동을 똑 같이 따라 해야 한다면, 차라리 천 년 전 엣 사람을 친구로 삼든가 일백 세대 뒤에 태어난 사람과 마음이 통하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연암 박지원이 친구인 <경보敬甫>에게 보낸 짧은 편지글입니다.
연암의 말마따나 신기하지요. 이 넓은 천지에서 이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남쪽에서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생각을 하고, 그래서 만난 우리들,
신기하고도 오묘하고, 기가 막힌 인연입니다.
그런 기막힌 인연들이 시절 인연인 사람들이 있고,
평생을 함께 하는 인연들이 있습니다. 시절 인연들은 그 시절이 지나면
이런 저런 이유로 갈라지는 것이 다반사지요,
니체가 말한 ’운명애’처럼, ‘감내하고 사랑해야 할 운명, 그래서
‘눈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부정‘ 이라는
그런 슬픈 인연이라면 그나마 나을 텐데,
계속 ‘뒷 담화’ 속에서 서로 멍드는 그런 인연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는 이제라도 그런 인연들조차 중히 여기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한 겹 두 겹도 아닌 억겁으로 운명 지워진 인연,
그런 인연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인연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누구도 그 인연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끊을 수도 맺을 수도 없는 그 인연이
한산자라는 사람이 지은 <한산시>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평생에 무엇을 시름할 것인가?
그저 세상 인연 따라 지내가는 걸,
해와 달은 흐르는 물결 같거니
광음은 돌 속의 불꽃같아라.
천지야 변하는가. 변한다 하라.
나는 바위 사이에 즐겁게 앉아 있네,“ 습득시 367
모두다 인연 따라 이루어지고 인연 따라 흩어지기도 하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라면 그건 슬픔일까요? 기쁨일까요?
“먼저 태어나지도 않고, 뒤에 나지도 않아, 한 세상에 함께 태어났구려. 남쪽 땅에 나지도 않고, 북쪽 땅에 나지도 않아, 한 마을에 사는 구려! 느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천지여! 부모여! 감사합니다.”
박지원과 오랫동안 서로 교류를 나누며 학문을 연마했던
이덕무의 <천애지기서天涯知己書>의 ‘필담筆談’에 실린 글입니다.
당신과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일, 그 일은
이 땅에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이렇게 저렇게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아직까지 그 땅을 걸어갈 다리의 힘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못 난놈은 못난 놈 얼굴만 봐도 좋다.“는 속담처럼
‘아래 것,’ ’상 것,‘ 하며 걷다가 쉬다가 걸어 갈, 그 길 앞에서
당신과 나의 인연이 그렇게 길게 이어지기를 소망하는
그것이 나의 소박하고도 큰 기원입니다.
당신의 건강과 행복이 길 위에서 영원하기를 기원합니다.“
2016년 12월 3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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