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한가하게 해찰도 해가며 사는 삶을 살자.
어린 시절도 그렇지만 청소년 시절에도 듣지 못했던 말을
나이 들어서 자주 듣는다.
“어쩌면 그렇게 머리가 좋으십니까?“
나는 그 말에 대꾸할 말을 잃는다.
과연 내가 머리가 좋고. 똑똑한 사람일까?
아니다. 그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살아온 세월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돈도 없지만 학연이나 지연, 그렇다고 기댈 언덕도 없다보니
계산 할 것이 별로 없었고, 그렇다고 잴 것도 별로 없이 살아온 세월,
그러다 보니 세상의 때를 조금 덜 묻혀서 그런 것은 아닐까?
솔직하게 나를 표현한다면 똑똑한 것이 아니라 조금은 어수룩하고,
조금은 한심한 그런 사람이 맞을 것이다.
“말이 없고, 서툴고 어수룩하고”
경주 사람인 수운 최제우崔濟愚가 창시한 동학에서는
그런 사람을 바로 ‘사람의 덕의 표준’이라고 하였다.
요즘 세상에서도 그렇게 산다면 그 사람이 과연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그렇게 살아간다면 밑바닥 삶을 전전하거나
정신병원에 가기 십상일 것이다.
하지만 옛날 옛 사람들은 그 어수룩한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만큼 자연 속에서 순수하게 사는 것을
최상의 삶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어수룩하다’는 ‘졸拙’ ‘자字‘로서
수많은 죄와 잘못을 면할 수 있고,
‘유유자적하다’는 ‘한閑’자로서
수많은 편함을 얻을 수 있다.
육소형이라는 사람이 편찬한 <취고당검소>에 실린 글이다.
‘어리석다‘ 는 말과 ’어수룩하다.’ 는 말이 다르지만
거의 비슷하게 받아들이는 오늘날의 사회 풍조에서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모르지만 나는 어수룩하다는 말을 좋아한다.
이왕 한 평생 사는 것, 어수룩하면서도 한가하게
여기, 저기 거닐며 해찰도 해가며 살다 가는 것,
그게 바로 재미있는 삶이 아닐까?
인생 살아보니 별 것도 없다. 남을 것도 없지만 밑질 것도 별로 없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그 무엇에건 연연할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안다.
“내 몸조차 친숙하지 않은데,
하물며 내 몸 밖의 사물들이야 어떻겠나.
땅 덩어리조차 허상인데,
이 땅 덩어리 안에 사는 미물이야 어떻겠나.“
다시 <취고당검소>의 한 소절이다.
그래,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한 평생이다.
그 짧다면 짧고 길다 면 긴 인생을
조금은 한가하게, 조금은 어리숙하게 살다가 가야겠다
지금의 내 생각이다.
2017년 1월 3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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