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3

내가 사는 곳의 골목을 걷는 즐거움,

산중산담 2017. 4. 10. 14:06

 

내가 사는 곳의 골목을 걷는 즐거움,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른다.‘

등잔 밑이 어둡다.‘ 라는 속담이 있다.

등잔 맡이 어두우면 불을 켜고 찾으면 되는데,

찾지를 않고, ‘어둡다고 푸념만 한다는 것이다.

먼데는 잘 알면서 가까운 곳을 모른다는 말인데,

전주 소식지 <전주다움>에 글을 쓰기 위해서

내가 사는 진북동의 이곳저곳을, 어정거렸다.

어쩌면 빈둥거렸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지도 모르는데,

진북동의 숲정이 성당, 숲정이 성지를 돌아보며

한국천주교회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오랜만에 만난

알프스 김홍곤 선생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무며 걸었던 시간들이

겨울의 한 복판 춥지는 않지만 추운 마음속을 훈훈하게 덮여주었다.

어은골로 불리고 있지만 한글학회에서 펴낸 <한국지명총람>에는

엉골로 쓰여 있고, 엉골산이라고 표시 된 마을을 지나

도착한 도토리골은 그 형상이 배의 돛대형상이라고 해서

돛대, 또는 풀어쓰다가 보니 도토리마을이 되었다.

빈집들이 여기저기서 을사년스런 모습으로 나그네를 맞고 있는 마을,

대낮인데도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고, 오래 된 벽에

애인 구함이라는 말이 육십년 대 풍경으로 남아 있는 마을,

대낮인데도 어둡고 칙칙하게 이어진 골목,

복덕방에서 방을 구해주던 주인은 어디로 갔는가?

문득 떠오르던 밀란 쿤데라의 <느림>의 한 소절.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골목길에서 사라진 옛 이야기를 긁어모으는 두 사내,

그 사이에도 흐르는 세월을 스치고 지나가는 눅눅한 바람이

동무해주던 그 시간이 추억이 된 이 새벽,

이 시간 역시 금세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되는

시간 속에 나는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201716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