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3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시간,

산중산담 2017. 4. 10. 14:45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시간,

 

 

어느 시간, 가장 고요한 때가 있다. 달리 할 일도 없고, 누군가로부터 연락 받을 일도, 연락할 것도 없는 때, 그런 때가 있다. 책을 읽거나 쓰는 것 외에 달리 볼만한 TV 프로그램도 없고, 잠시 방안을 서성거리다가 책을 읽고, 다시 글을 쓰고 하다가 보면 아늑하기도 하고 아득하기도 한 고요와 정적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책 속이나 나 자신에 빠져 있다가 보면, 그토록 소란한 지상에서의 일상에서 마치 고립된 섬으로 도피했던 것처럼 아무런 소음도 듣지 못한 채 하루를 보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승용차나 택시들이 지나가면서 내는 소음, 왁자지껄한 아파트 주민들의 소음, 그리고 가끔 씩 들리는 새들이나 풀벌레 소리들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아니면 한 번도 그 소리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들리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다.

신기하다, 신기해, 그 신기하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한 것이 가끔씩 일어나는 것이다.

고요 속에서 나도 고요가 되는 그 경이, 그렇다면 진정한 고요는 어떤 것을 말하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고요는 소음이 멈출 때의 고요, 생각이 멈출 때의 고요뿐인데, 그러나 그것은 고요가 아니다. 고요는 아름다움이나 사랑처럼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다. 이 고요는 고요한 마음의 산물이 아니며, 뇌세포, 그 전 구조를 알고, ‘제발 좀 조용히 해줘라고 말하는 뇌세포의 산물이 아니다. (...)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는 것이며, 그리고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아는 것에 대해, 마음의 상처와 감인이설에 대해, 당신이 만든 모든 이미지와 체험들에 대해 매일 죽을 때에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매일 죽음으로써 뇌세포들 자신이 새로워지고, 젊어지고, 순진해질 때에만 잇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천진 성, 그 새로움, 그 유연함과 부드러움이라는 성질은 사랑을 낳지 않는다. 그것은 아름다움이나 고요의 성질이 아니다.

소음이 끝남으로써 생기는 고요가 아닌 고요는 다만 작은 시작일 뿐이다. 그것은 거대하고 광대하고 넓은 바다로 가려고, 측량할 길 없고, 영원한 상태에로 가려고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당신이 의식의 전 구조와 쾌락, 슬픔, 절망의 의미를 이해했을 때에만, 그리고 뇌세포자신들이 조용해졌을 때에만 당신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뿐, 말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럴 때 아마도 당신은 아무도 당신에게 보여줄 수 없고, 파괴할 수 없는 신비와 만나게 될는지 모른다.

살아 있는 마음은 고요한 마음이며, 살아 있는 마음은 아무 중심도 없고, 따라서 아무 공간이나 시간도 없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은 무한하고, 또 그것이 유일한 진리이며, 그것이 유일한 실재인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에 실린 글이다.

그가 책에서 말했던 그 고요를 어느 순간 체험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그렇다면 그러한 시간, 고요의 시간은 한 사람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간일 것인데,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어떤 정황을 통해 알 수 있을까?

바다의 물결로 항구가 가까워졌음을 알듯이,

평온한 구름이 보일 듯 말 듯 그리는 잔주름과 그 고요함을 보고

밤이 다가오고 있음을 안다.”

<어린 왕자>의 작가인 생텍쥐페리의 글이다.

어둠이 걷히고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이거나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리는 그 시간에

인간의 마음은 숙연하고 차분해지면서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는 것이다.

그런 시간 속에서 나를 되돌아보는 것,

그것이 나의 삶을 조금씩이나마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2017210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