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3

두 갈래 길에서, 당신은 어느 길을 걸어갈 것인가?

산중산담 2017. 4. 10. 14:47

 

두 갈래 길에서, 당신은 어느 길을 걸어갈 것인가?

 

 

, 길이 있다. 그 길이 저마다 다르다.

어떤 길은 시야가 확 트인 큰 길이다.

어딜 보아도 걸리는 데가 없는 평탄한 길,

그 길을 유유자적 노래하면서 걸어가는 사람이 있고,

어떤 길은 입구도 비좁고, 돌멩이와 가시밭길이 우거진 길이다.

그 길을 상처투성이로 힘겹게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늘의 이 시대의 방정식으로 얘기한다면

금 수저와 흙 수저일지도 모른다.

두 갈래의 길이 얼마나 다른지는 살아 봐야 알고,

그 길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역시 살아봐야 안다.

하지만 기나긴 인생의 전 과정을 통해서

어느 것이 더 행복한 삶이고, 불행한 삶인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삶이란 저마다의 삶이 다 다르고,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잣대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모든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향해 단 한 한순간도

쉬지 않고 전력질주하고 있고, 그 끝에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영원을 사는 것도 아니??/span>, 어찌 보면 잠시 한 순간을 살다가가는 이 인생길에서

어떤 사람은 수많은 고초와 슬픔과 절망을 견뎌내며 살다가 가고

어떤 사람은 손에 물 한번 묻히지 않고, 가난이나 절망의 언저리에도 가지 않고,

평탄한 삶을 살다가 가는 사람도 있다.

그 두 부류 중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그 누가 평가할 수 있을까?

아무도 없다. 삶의 경중輕重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그것은 인간의 삶이 이 우주의 영원永遠 속에서 한 우주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 긴 길을 뒤로 돌아가면, 그것은 영원으로 통한다.

또한 이 길고 긴 길을 앞으로 걸어 나가면

그것은 또 하나의 다른 영원으로 통한다.

이 길들은 서로 모순된다. 그러면서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 이 성문이 서로가 맞닿는 지점인 것이다.

성문의 이름은 순간瞬間이라고 위에 써 있다.

그러나 여기 한 사람이 있어, 이 둘 중의 한길을 간다고 하자.

점점 앞으로 더욱 더 멀리 간다고 할 때, 그대는 아는가?

이 두 길이 영원히 모순된다는 것을

직선을 이루는 것에서 모든 일체의 것은 거짓인 것이다.

일체의 진리는 곡선인 것이다. 시간 자체도 원주圓周인 것이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3환영과 수수께끼에 실린 글이다

사람들의 삶에도 몇 가지 방식이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두 가지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잘 사는 것과 못 사는 것, 그런데, 예전에는 중류층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중간 계층이 사라지고, 상류와 하류만 남았다는 것이다.

사람이 걸어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여러 길들이 있었다. 그 길 중 평탄한 길만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고 그 의미 있는 행보를 내 딛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편하고, 순탄한 길만 선호한다.

당신은 그 여러 갈래 길 중 어느 길로 걸어갈 것인가?

곡선과, 직선, 하지만 나는 두 가지 길 중 구부러진 길, 즉 곡선을 사랑한다.

그 길이 상처와 슬픔과 절망을 예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밝음과 어두움, 그늘과 양지,

나는 그늘이 없는 삶을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사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길은 누구에게나 이미 예정되어 있을 뿐이고,

그것을 모르는 인간들이 그 길 앞에서 망설이고 있을 뿐이다.

, 길이, 저렇게 많은 길들이 당신을 위해 펼쳐져 있다.

어느 길을 걸어갈 것인가?

 

 

2017213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