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3

한가롭게 사는 것이 인생의 큰 축복 중의 하나다.

산중산담 2017. 4. 10. 14:52

 

한가롭게 사는 것이 인생의 큰 축복 중의 하나다.

동우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1,2가 나오면 사언四言의 글을 읽고,

3,4,5,6이 나오면 오언시를 지으라.

동우는 자신을 찾아와 글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먼저 백번을 읽어라. 그러면 저절로 뜻이 나타날 것이다.”

그런 그에게 여유가 없어 글 읽을 시간이 없다는 제자에게

세 가지 여가 시간에 공부하라고 하였다. 제자가 물었다.

세 가지 여가란 어떤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까?”

동우는 이렇게 대답했다.

겨울은 한 해의 여가요, 밤은 낮의 여가요,

비바람 치는 때는 시간의 여가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의

<배송지裵松之의 삼국지주三國志注>에 실린 글이다.

한가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큰 축복인 것인데.

바쁘고 한가한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내 스스로가 바쁘다고 생각하면

매 순간 순간이 바쁘고

한가하다고 생각하면 매 순간이 한가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가한 시간은 자기 스스로가 한가하다고 여기는

그 시간을 만들어낼 때 한가한 것이다.

박규수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풀어서 말했다.

여유 있는 시간을 기다려 책을 읽고자 하면

해를 마칠 때까지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없다.

여유가 있을 때를 기다려 남을 구제하려는 사람은

죽는 날까지 남을 구제할 시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여유가 없다면 어찌 해야 하는가?

옛 사람은 한가로울 때도 바쁜 한 순간이 있듯이,

바쁠 때도 한가로운 한 순간이 있다.(間時忙得一刻 忙時間得一刻)’

라고 하였다.

어찌 독서만이 그러랴?

무릇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 말을

자신을 반성하는 도구로 삼아야 리라.

이 이야기를 적어두어 옛일을 본받고자 한다.“

그렇다면 나는 한가한 사람인가? 바쁜 사람인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한가한 것도 아니고 바쁜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바빠도 한가하다고 여유를 부리고

그래서 애써 한가하다고 여기며 살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편안하고 한가함이 약이 되고,

잎이 피고 지는 것에 봄과 가을을 안다.

멀리 알리거니와 산중의 객인 나는 길이

그러한 가운데에서 살아왔다오.“

문득 용재 이행李荇의 글 한 편이 떠오른다.

그래, 한가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렇게 길 위에서 봄을 맞고,

봄을 보내고, 다시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맞고 보내며

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 때에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지금 나와 함께 길을 걷는 도반들 일 것이고,

그리고 매 순간 걸으면서 느끼는, 나의 곤란,

나의 고통, 나의 절망일 것이다.

한가하다고 여기며 살아온 나의 인생,

한가하게 살다가 한가하게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소망일까?

 

2017222일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