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프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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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지방의 이곳저곳을 답사하고서
득량만의 일몰을 보고
선암사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선암사 홍예문의 경치를 마음에 담고
선암사 홍매와 선암매에 취한 뒤
굴목이재를 넘어서 송광사에 이르는 길을 걸었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만난 나무와 풀들,
그리고 수줍게 나무 밑 둥에 고개 내민 얼레지 꽃,
시절은 봄입니다. 봄은 봄인데, 봄 같지 않은 봄,
돌아와 생각하니 내 마음도 역시
봄은 봄인데, 봄이 아닌 그런 세월을 살았다는 것을 압니다.
어렸을 때 어린 시절 가난과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형성된 병 아닌 병,
‘애정결핍증’ ‘지독한 우울증’과 ‘문자중독증,’ 거기에다
그러한 여러 가지 ‘병病’이 ‘내 삶’의 온갖 것들을 이루고 있었고,
그 ‘병환病患’을 치유하기 위해 선택했던 것이 ‘걷기’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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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차이가 뭘까요? 환자는 침대에 누워 있고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있는 걸까요?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차이는
‘걷다’가 되는 것입니다.
환자는 걷지 못하고, 건강한 사람은 걷고 있다.
이 말은 곧, 계속 걸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환자라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자신의 길을 중단한 사람이 곧 환자라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없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잠시라도 그 걸음을 멈추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지금 아파서 몸져누워 있다는 뜻입니다.”
나이팅게일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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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나는 여러 가지 병을 앓고 있는 ‘중환자重患者’이고,
그래서 수없이 자살을 꿈꾸었으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이렇게나마 근근이 나를 지탱해나가며 살고 있고, 살아 있는 것은
매주 ‘답사’라는 이름으로 떠나서 걸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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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새삼 압니다. 아무도 ‘나’일 수 없고, 아무도 ‘타자’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잘 모르면서 어찌 세상을 안다고 하며
내가 나 하나도 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세상의 한 귀퉁이라도 구하겠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가끔씩 살아 온 세월이 부끄럽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해서
저녁 내내 잠을 설칠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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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나는 ‘우울증 환자’이자, ‘애정 결핍증 환자’
거기에다가 ‘문자 중독증 환자’라서 책이 곁에 없으면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그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들이 나를 어디 한 군데 머물러 살지 못하고
떠돌게 했고, 지금도 그래서 떠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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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압니다. 나만 아픈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아프다는 사실을,
환자가 아닌 듯싶지만 엄연한 환자라는 사실을,
내가 바로 그 중환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쉬지 않고 걸었는데도 나는 치유되지 않은 환자라는 사실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방법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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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 까지 걷고 또 걷자’
그 방법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그 사실이
슬프지만 정답이라는 것을 믿고 또 믿으며
나는 오늘도 내일도 걸어갈 것이라는 것,
이 새벽의 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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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0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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