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동해 해파랑길>을 걷다. 영덕 고래불해수욕장에서 울진 망양정까지

산중산담 2017. 7. 24. 15:04

 

부산 오륙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그 여섯 번째 영덕 고래불해수욕장에서 울진 망양정까지

부산 오륙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동해 해파랑길>을 걷다.

-그 여섯 번째 영덕 고래불해수욕장에서 울진 망양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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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2017년의 정기기행 그 여섯 번째가 여름 휴가 관계로 7월 둘째 주인 77일에서 9일까지 23일간에 걸쳐 실시됩니다.

영덕의 고래불해수욕장에서 후포항을 지나고 월송정과 구산항을 지나 울진군 북면 산포리까지 이어질 이번 여정은 나라 안에서 가장 빼어난 관동팔경을 따라 펼쳐질 것입니다.

7월의 피서 철 때문에 둘째 주에 진행되는 해파랑 길에 많은 참여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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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포경지捕鯨地, 고래불 해수욕장

고래불은 병곡면 병곡리에서 휘리리까지, 동해바다를 따라 약 4키로미터에 이르는 긴 모래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 예전에 고래를 잡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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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병곡역이 있던 병곡

지형이 마치 자리(자루)와 같다고 하여 붙인 지명, 병곡리. 병곡에서 후포로 가는 길은 바닷가에 인접한 2차선 길이었다. 그런데 요즘 4차선으로 확장공사를 하느라 어수선하다. 4차선이 완공되면 어떤 변화들이 있을지 알 수 없으나, 이 지역을 건너가는 도보답사길을 달리 모색해야 할 것 같다.

백석 회도매센터를 지나자 칠보산(七寶山. 810.2m) 휴게소가 나타난다. 칠보산은 경북 영덕군 병곡면과 울진군 온정면 경계에 솟아 있다. 낙동정맥이 백암산을 거쳐 남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정맥을 비켜 동쪽 해안가에 솟구치게 한 산. 이 산에도 전설은 깃들어 있다.

옛날 중국의 지리학자 사두충이 이 계곡에 왔다 물을 마시게 되었는데, 그 물맛이 예사롭지 않다며 반드시 이 산에 일곱 가지 보물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그 말에 사람들이 산을 샅샅이 수색하였고, , , 더덕, 산삼, 황기, 멧돼지, , 철이라는 7가지 보물을 찾게 되었다. 그 결과 이 산을 칠보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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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평해군 남면 지역으로 후리포라고도 불렀던 후포항(厚浦港). 지금은 울진군에 속하여 그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동해중부해역의 주요 어항(漁港)으로 꽁치·오징어·고등어·대게·가자미 등 동해에서 산출되는 모든 어종의 집산지이다. 후리포란 교통이 불편했던 1960년대까지도 만선으로 돌아 온 어선들이 부근 수요자에게 팔고 남은 고기를 거저 누구라도 가져가게 할 정도로 인심이 후한 어촌이었다. 그래서 후포라는 지명을 얻었다는데, 후포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대구까지 거리가 219.4킬로미터나 되는데다 냉동시설조차 변변치 않았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항구 주변으로 선박모양으로 건축된 후포수산업협동조합과 후포수협회센터·어판장·후포어시장·횟집 등이 즐비하다. 항구 뒤쪽 등기산(64m)1968년부터 가동된 후포등대가 있고 그 주변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항구 방파제는 이제 감성돔·학꽁치 등이 잘 잡히는 이름난 낚시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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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에 드는 월송정

월송정으로 들어가는 들목, 굵은 소나무들이 운치를 더한다. 이 소나무 숲을 성단송전城壇松田이라 부르는데, 이곳에 황장군단비黃將軍壇碑가 있는데 평해. 장수. 창원 황씨 시조인 황낙黃洛의 비이다. 중국 당나라 고종 시절 학사를 지낸 황낙이 굴미봉 아래에서 살기도 했고, 근처에 묘도 있어 그를 추모하기 위해 단을 쌓고 비를 세웠다. 황장군단비 앞에 황낙을 모신 추원재追遠齋가 있다. 그 소나무 숲길을 따라 한참을 가니 월송정이다.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월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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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 ‘누정조에 월송정이 기록되어 있다.

월송정(越松亭): 고을 동쪽 7리에 있다. 푸른 소나무가 만 그루요, 흰 모래는 눈과 같다. 소나무 사이로는 개미도 다니지 않고, 새들?? 집을 짓지 않는다. 민간에서 전승되기를 신라 때 신선 술랑述郞등이 이곳에서 놀고 쉬었다.“ 한다.

누구라도 매혹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이곳 월송정에는 얽힌 이야기도 많다. 월송정이라는 지명을 두고도, 옛날 영랑, 술랑, 남속, 안양이라는 네 화랑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이곳을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 하여 월송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고, 누군가는 중국 월나라 산에 있던 소나무를 배로 싣고 와 이곳에 심었다 하여 붙은 지명이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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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로 가던 뱃길 구산항

철 지난 바닷가를 찾는 발길이 뜸하다고는 하지만, 구산항은 너무 한가로웠다. 사람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다. 조선시대 후기인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이곳 구산항은 육지에서 울릉도로 가는 가장 일반적인 항로였다. 문화재자료 제493호로 지정된 대풍헌待風軒은 그 당시 구산포에서 울릉도로 가려던 수토사들이 쉬어 가던 곳이다.

수 세기 전만해도 울릉도는 삼척첨사 또는 월송만호의 관할권으로 되어있었기에 안무사安撫使나 경차관敬差官(누가 갔나요?) 이 매 3년마다 한번 씩 수토搜討 차 울릉도에 갔다. 대풍헌은 수토출발지로 되어 있어 수토사(搜討使)들이 순풍(順風)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장소이다. 그곳에서 며칠 동안 순풍을 기다리다 파도가 잠잠해지면 구산포(邱山浦)를 출발하는데, 출항하여 통상 2~3일이면 울릉도에 도착했다고 한다. 대풍헌은 정확한 건립연대를 확인할 수 없으나 '구산동사중수기'에 철종 2(1851)에 중수하여 대풍헌이란 현판을 걸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정면 4, 측면 3칸의 일자형(一字形) 팔작집 양식으로 다소 조잡하게 지어졌다는 느낌이 드는 건물이다. 그렇지만 조선시대 울릉도를 관리하던 수토사들의 출발지였다는 기록과 함께 남아 조선 시대에 울릉도를 지속적으로 관리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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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터만 남은 관동팔경 그 복원을 꿈꾸며

기성면 망양리 망양정, 이제 정자는 사라진 빈터에 망양적 표적으로 세운 비석과 소나무 몇 그루가 있다. 그곳에서 바다를 본다. 거세게 일어났다 스러지는 파도소리가 가슴을 후려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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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이곳 망양정에 올랐던 이산해의 시문으로 그 아쉬움을 달랜다.

망양정

바다를 낀 높은 전정자 전망이 탁 트여

올라가 보면 가슴 속이 후련히 씻기지

긴 바람이 환혼의 달을 불어 올리면

황금 궁궐이 옥거울 속에 영롱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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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자취가 서린 이곳 평해군 기성면 망양리 앞 모래사장 가에 있던 망양정은 조선 세종 시절에 이르러 평해군수 채신보가 오래되어 스러져가는 정자를 마을 남쪽 현종산 기슭로 옮겨 다시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중종 시대에 안렴사 윤희인이 평해군수 김세우에게 명하여 중수하였으나 그 또한 오래되어 쇠락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근남면 산포리로 망양정이 옮겨가면서 이곳에는 표적으로 세운 비석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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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역이 있던 덕신리

해가 부상扶桑에서 떠서 두 장대나 올라왔는데, 한쪽에는 북두칠성이 아직도 비꼈네.

바람에 갈리고 비에 씻겼으니, 털끝도 깨끗하고, 안개 흩어지고 구름 걷혔으니 안계眼界도 넓구나.

혼자 생각해도 우스운 일, 세상물정은 바닷 속처럼 알길 없는데, 학술을 가르침은 물결 볼 줄 알겠네.

분분하게 남쪽 북쪽에 오가는 사신 많은데, 이곳은 보통 역사驛舍로 보지 말게나.”

이곡李穀이 시로 노래한 덕신역이 있던 지역, 덕신리이다.

덕신리에서 917번 지방도를 따라가니 선박 몇 척이 정박되어 있는 오산항이 보인다. 이곳에서 산포리로 이어지는 바닷길은 차량소통이 적고 한가로워 여유로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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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리에서 신 망양정에 오르다

산포리 바닷가 후리마을 북쪽으로 두 개의 산 봉우리가 솟아 있고 그 아래로 왕피천王避川이 흘러 동해바다로 들어가는 곳, 그곳 산모퉁이에 현재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는 망양정이 있다.

원래 기성면 망양리에 있던 망양정이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세워지기는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고종 19년인 1883년 울진현령 이희호李熙虎가 임학영林鶴英과 더불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으나, 곧 바로 허물어져 주춧돌만 남게 되었는데 19598월 강원도와 울진교육청이 협력하여 다시 세웠다. 그러나 숙종 임금 친필 편액은 울진군 읍내리 객사客舍 동대청에 보관하다가 분실하였다하니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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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해와 관동팔경을 따라 펼쳐지는 이번 행사는 초여름의 더위를 날리면서 걷는 행복한 답사로 진행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