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젖어 하얀 눈길을 걸었네.
슬픔에 젖어 길을 걸었네.
무릎까지 쌓이는 눈길,
그 하얀 눈길을 걸었네.
아침이 부옇게 밝아오는 신작로에
눈보라의 군단처럼 하얀 눈이 퍼붓던
그 길을 걸었네.
슬픔에 젖어 길을 걸었네.
삶이 죽음이 되고, 죽음이 삶이 되는
이 세상의 한 가운데에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혀서 살다가
가는 사람은 가고, 남는 사람은 남은 길,
그 하얀 눈길을
눈물이 범벅이 되어 걸었네.
슬픔에 젖어 걸었네,
하얀 눈길을 걸었네.
세상의 모든 근심 다 짊어지고서
세상의 가장 깊은 고뇌 속
그 하얀 눈길을 길었네.
아버님 장례 치를 돈이 없어
장례비를 빌리러 가던
그 하얀 새벽 눈길을,
문득 1981년 12월 31일 그해, 마지막 날,
새벽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장례 치를 돈이 없어 장례비를 빌리러
새벽 눈길을 헤치고 가던 그 시절이 생각이 나서
몇 줄 쓰고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렀구나.
그런데도 그 때 그 일은 가슴 속에 상처로 남아
가끔씩 내 마음을 들쑤시고 일어나는데,
가는 세월 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
다 지나갔는데,
가끔씩 두루마기처럼 펼쳐지는 추억들,
어쩌란 말인가?
2017년 7월 6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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