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4

슬픔에 젖어 하얀 눈길을 걸었네.

산중산담 2017. 7. 24. 16:34

 

슬픔에 젖어 하얀 눈길을 걸었네.

 

 

 

슬픔에 젖어 길을 걸었네.

무릎까지 쌓이는 눈길,

그 하얀 눈길을 걸었네.

 

아침이 부옇게 밝아오는 신작로에

눈보라의 군단처럼 하얀 눈이 퍼붓던

그 길을 걸었네.

 

슬픔에 젖어 길을 걸었네.

삶이 죽음이 되고, 죽음이 삶이 되는

이 세상의 한 가운데에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혀서 살다가

가는 사람은 가고, 남는 사람은 남은 길,

그 하얀 눈길을

눈물이 범벅이 되어 걸었네.

 

슬픔에 젖어 걸었네,

하얀 눈길을 걸었네.

세상의 모든 근심 다 짊어지고서

세상의 가장 깊은 고뇌 속

그 하얀 눈길을 길었네.

 

아버님 장례 치를 돈이 없어

장례비를 빌리러 가던

그 하얀 새벽 눈길을,

 

문득 19811231일 그해, 마지막 날,

새벽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장례 치를 돈이 없어 장례비를 빌리러

새벽 눈길을 헤치고 가던 그 시절이 생각이 나서

몇 줄 쓰고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렀구나.

그런데도 그 때 그 일은 가슴 속에 상처로 남아

가끔씩 내 마음을 들쑤시고 일어나는데,

가는 세월 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

다 지나갔는데,

가끔씩 두루마기처럼 펼쳐지는 추억들,

어쩌란 말인가?

 

201776,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