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사는 것은 즐거움인가, 괴로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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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세상에서 벗어나 숨어 살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도 모르는 섬이나, 아니면 깊은 산속 깊은 데로 들어가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자연이 되어 살고 싶은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란 세상이 너무 번잡해졌을 뿐더러
살아온 내력들이나 여건이 맞지 않아서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살아야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숨은 듯 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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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의 문장가인 목은 이색李穡의 <남곡기南谷記.>에는
그와 과방에 올랐던 사람에 대한 글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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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구 남쪽에 남곡이 있는데, 나와 같은 과방科榜에 오른 이 선생이 산다.
어떤 사람이, ‘선생은 숨어 사는 것인가,’ 하고 묻기에,
나는 ‘숨은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였다.
‘벼슬 하는 것인가,’ ‘벼슬하는 것도 아니다.’ 하니,
그 사람은 매우 의혹하여서 또, ‘벼슬하는 것도 아니고,
숨은 것도 아니라면 무슨 생활인가,’하므로 나는 말하였다.
‘나는 둘이니, 숨어 사는 자는 그 몸만 숨기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이름도 숨긴다. 홀로 이름만 숨길뿐 아니라,
또 반드시 그 마음마저 숨긴다.’ 한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고, 남이 알까 두려워하여서
남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중략)
지금 선생이 남곡에 살면서 밭도 있고 집도 있어,
관혼상제에 쓰임이 족하니, 세리世利에 무심한 지가 오래이다.
그러나 숨었다는 것으로 자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해마다 서울에 와서 옛 친구를 방문하고 한껏 마시면서 담소한다.
왕래하는 도중에는 파리한 아이 종과 여윈 말로써 채찍을 세워 잡고
시를 읊조리는데, 흰 수염은 눈 같으며, 붉은 뺨에는 광채가 넘친다.
그림 잘 그리는 자를 시켜 그의 신색을 그리면. 반드시
삼봉연엽도를 양보하지 않으리라.
남곡은 산에 나무할만하고, 물에 고기 낚을만하여,
세상에 요구할 것이 없이 자족하다. 산이 명랑하고 물이 푸르러,
지경이 그윽하고, 사람이 고요하여, 눈을 들면 심경이 유연하여 진다.
비록 정신으로 팔극八極 의 끝에 가 논다 하는 것도
이보다 지나지 않을 것이니, 선생이 여기에서 스스로 즐김이 마땅하다.
내 쇠하고 병든 지 오래이나,
매양 시골에 돌아가고자 하여도 실행하지 못한다.
밭이 있으나 바다에 가깝고, 집이 있으나 밭이 너무 투박하므로,
두 가지가 완전한 것을 얻어서 나의 몸을 마치는 것이
나의 소망이나 어찌 쉽게 갈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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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요구할 것이 없어 자족하다는 남곡 선생처럼
세상에 자족한다면 어딘 들 못 살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세상사는 것이 만만하지 않아서 그런지, 마음을 아직도
다 잡지 못해서 그런지, 이래저래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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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하랴, 하며 코웃음 치면서도,
가끔씩 이런 저런 세상의 잡다한 것들을 비교 하면서
의기소침해지는 마음이여,
큰 도시는 큰 고독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도시 한 구석을 차지하고, 숨은 것도 아닌,
그렇다고 익명으로 사는 것도 아닌,
어디 크게 드러나지도 않은 채 그럭저럭 한 생을 살아가는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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