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날 그날 주어진 삶을 하루가 다하는 시간에
이렇게 저렇게 되돌아볼 때가 있다.
오늘 하루 잘 살았는가?
아니면 오늘 하루 별 볼일 없이 살았는가?
그런데 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하루를 그냥 허비한 것 같기도 하고,
하루를 제법 잘 지낸 것 같기도 하지만,
지내놓고 나면 아쉬움이 가슴 속에 가득히 밀려오는 것은
그 무슨 연유인가?
그런 아쉬움과 슬픔이 이 세상 누구에게나 있는데,
주옥같은 시와 소설, 그리고 아름다운 산문을 많이 남긴 릴케가
1915년에 ‘말트라’라는 처녀에게 보낸 편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로 울림이 크다.
“이 일 년 내내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놀라움과
괴로움의 사막 가운데를 걷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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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 놀라움과 괴로움의 사막 가운데,
타클라마칸 사막을 걷는 것과 같은 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 그 누구의 삶일지라도 평탄하고 행복한 삶만은 없는 것이다.
릴케의 생애를 두고 <아웃사이더>의 저자인 콜린 월슨의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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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는 위대하였지만, 그는 실천에서보다 이론에서
한결 깊은 통찰에 달한 것이었다. 생애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는 명백히 보았다. 진실로, 위대한 시인은 오르페우스가 되어
무슨 일이 있더라도...강렬히 살아야만 하는 것을
그는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평생을 두고 그는 끝내 이것을 실천에 옮길 수 없었다.
그는.....니체주의자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릴케 자신은 그렇게 위대해질 수 없었다.
그는 성城에서 성으로 관館에서 관으로 돌아다니면서,
부유한 부인들이 쓴 서투른 시를 읽어주고,
귀족 계급의 하찮은 족속들과 ‘심각한 대화’를 교환했으며,
그 사이 사이엔 길버트의 희곡에 나오는
만성 우울증 환자 번존과 같은 이상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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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다른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는데,
사람들은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를 좋아한다.
너는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무수한 타인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알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알 수 있기를 갈망하며,
어딘가 알 수 없는 그곳, 그곳으로 가고 있다.
그곳이 어디인가?
물어도, 물어도 알 수 없는 그곳으로 간 릴케의 묘비명墓碑銘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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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오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서의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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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도 아닌 잠을 자고, 걸으면서도 자고,
자고 또 자면서 가야하는 세상사
과연 어디쯤에서 우리가 가고자하는 그 나라를 발견할 것인가?
아니면 가다가 어느 바람 부는 길목에서 마무리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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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7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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