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이 행복한 죽음인가?
삶이 푸른빛으로 빛나던 때가 있고,
회색빛으로 음울할 때가 있다.
지금은 어느 때인가?
새롭게 탄생하는 이야기는 없고,
여기서도 저기서도
죽음에 대한 소문만 무성하다.
어디 특정인들만 죽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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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은 죽는 것,
일가친척들도 죽는다.
너도 그들처럼 죽는다.
그러나 경건한 사람이 얻는
‘명성은 길이 남는 것,“
고대 게르만 시대의 구전된 노래집
<에다 Die Edda>에 실려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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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는 것이 변하지 않는 진리이고,
그리고 죽음은 그 뿐, 다시 삶이란 없다. 그러므로
사후에 얻는 명성 또한 부질없는 것,
어떻게 죽어야 행복한 죽음인가?
그 또한 부질없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죽기를 잘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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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죽음이 때로는 최고의 이력이다.”
권터라는 사람의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다가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인가?
“우리는 다시 한 번, 다 같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네, 우리 뭔가 좋은 일을 하며 죽자.!
인간들이 지금까지 죽어왔고, 앞으로도 죽을.
그런 수백만 죽음 중의 하나 일세.
죽음이란 마치 이방에서 나와 저 방으로 가는 것과 같은 거야.”
클라이스트의 말이 진실이라면 죽음이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이곳에서, 저 곳으로의 장소 이동, 그것이 죽음이다.
죽음 이전이 행복할지, 죽음 이후가 행복할지,
그건 나도 모르고 그대도 모른다. 그 죽음을 달게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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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젊음이 얼마나 되리
그렇게 빠르게 가버리는 것을
즐거움을 좇을 자는 좇아라.
내일조차 기약할 수 없으니,“
플로렌스의 영주 로렌츠오일 매니피코의 노래와 같이
저마다 정한 그 방식대로, 원도 끝도 없아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돌아가는 것,
그것이 바람직한 삶의 종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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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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