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새벽에 삼척에서 만난 거리의 악사들을 추억하다.
어제 삼척항에서 추암을 향해 해파랑 길을 걷고 있다가
예전에 해파랑 길을 걸을 때 보지 못했던 풍경을 만났다.
거리의 악사들이 노래를 자동차에 설치된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미 흘러간 노래, 그 노래를 부르며 추는 춤,
관객이 하나도 없는 가수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두 서너 명의 관객들이
바다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함께
흥을 함께 돋우고 있는 거리의 바다 음악회,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 이야기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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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곧 버릇대로 평상시의 산책로를 따라 센나야 광장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센나야 광장 못미처 조그만 상점 앞 차도에서 검은 머리의 젊은 악사가 아주 감상적인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는 열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자기 앞 보도 위에서서 부르는 노래에 반주를 해주고 있었다.
소녀는 귀부인처럼 넓은 스커트와 망토를 입고서 장갑을 끼고, 새빨간 깃털이 달린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으나, 그것들은 모두 오래 되어서 해진 것들이었다.
그녀는 거리의 가수 특유의 카랑카랑하면서도 제법 듣기 좋은 목소리로 잡화상에서 2꼬뻬이카라도 받아내길 고대하며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라스꼴리니코프는 청중 두세 사람과 나란히 서서 노래를 듣다가 동전을 꺼내어 소녀 손에 쥐어 주었다.
그녀는 갑자기 구성진 제일 높은 음에서 노래를 딱 끊듯이 멈추어 버리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악사에게 “가요” 하고 소리 질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음 상점 쪽으로 옮겨 갔다.
“당신은 거리의 악사를 좋아하십니까?”
라스꼴리니코프는 악사 옆에서 그와 나란히 서 있던 부랑인 인 듯한 그다지 젊어 보이지 않는 행인에게 불쑥 말을 걸었다.
그는 깜짝 놀란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저는 좋아합니다.”
라스꼬리리꼬프는 말을 이었지만, 그 태도는 전혀 거리의 노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저는 춥고 어둡고 축축한 가을날 저녁에, 반드시 축축한 날이어야 합니다. 모든 행인들이 창백하고 병자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그런 날 저녁이어야 합니다. 그런 날에 악사의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를 듣는 걸 좋아합니다.
아니면 바람 한 점 없이 진눈깨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더 좋지요, 아시겠습니까? 눈발 사이로 가스등이 빛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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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화창하고 맑았고, 바람은 알맞게 불어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오후,
어떤 사람의 노래는 약간 설익었고,
어떤 사람의 노래는 농익어서 금세 터질 것 같았고,
어떤 사람의 노래는 파도 소리에 묻혀서 바다가 되는 시간 속에
그 노래를 들으며 박수를 치고 어설픈 노래를 부르며 가던 우리들,
그 시간이 가을 날 저녁도 아니었고,
진눈깨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도 아니었다.
하늘도 바다도 눈이 부시게 푸르고 푸른 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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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들이 이미 추억이 된 신 새벽,
잠에서 깨어나 다시 출발을 준비하며
시간을 기다리는 나의 노래는
어느 거리 어느 바다를 향해 퍼져나갈지,
아니면 이 방안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좌초하고 말지,
헤매고 헤매는 나의 노래는 덧없고, 또 덧없는 노래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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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5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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