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사는 법을 배우고, 제대로 살다가 죽자.’
한 때, 아니 오랫동안, 나는
‘죽음’ 과 ‘자살’을
습관처럼 생각했고, 습관처럼 썼다.
노트에, 신문지에, 땅에, 내 마음에,
쓰고 또 썼다.
죽음이 나를 구원하리라 여겼던 것일까?
그때 들었던 음악들이 장송곡과 레퀘엠이었다.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곡 <죽음과 소녀> 제 2악장과
포레의 진혼곡을 들으면서
죽음이 아주 편안하게 올 것이란 생각에 빠졌던 것도
그 때 그 시절이었다.
과연 그 때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 죽음이
그처럼 감미롭게 음악처럼 나를 데려갈 수 있을까?
하여간 그 때 나는 ‘죽음’과 ‘자살’을 통해
나를 시험하고, 나를 발견하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나는 책의 바다에서 벗어나
한 발 한 발 걷기 시작했고, 걸으면서 ‘삶’에 충실하기 시작했다.
걷고, 읽고, 쓰고, 그게 내 삶이었다.
그러던 내가 어느 날부터 다시 ‘죽음’과 ‘자살’을 생각한다
삶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회의懷疑는
누구나 한 번은 감내해야 할 ‘그 ’죽음‘ 의 무게를
가볍게 할지 무겁게 할지, 그것은 모른다.
다만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어느 날 어떤 형태로든 끝나리라는 그것만 확실하다.
태어나는 것의 숙명은 돌아감이다.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내 마음에 섬광처럼 다가 온 생각,
얼마가 도리지 모르지만
‘제대로 사는 법을 배우고, 제대로 살다가 죽자.’
왜, 그런가?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롭게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지
저마다 다르지만 그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돌아갈 그 길이
저렇게 희미하게, 아스라하게 펼쳐져 있다.
그 길을 우리는 얼마나 걸어갈 수 있을까?
2017년 11월 30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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