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5

저마다 가야할 길이 있다.

산중산담 2018. 4. 26. 20:19

 

저마다 가야할 길이 있다.

 

서울에 갔다가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경주에 사는 이재호형으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한 사내가 고풍스런 수안보 근처의 한옥집에서 인터뷰를 하는 사진을

찍어서 보낸 것이다.

우연히 방송을 틀었더니 내가

영남대로를 걷고 있는 방송이 나와서 보낸 것이란다.

가끔씩 누군가로부터 방송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때마다 조금은 부끄럽고 계면쩍다.

이미 지난 시절에 찍은 방송이 여기저기 나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지만 어쩌겠는가? 힘들여 찍은 방송

<옛길, 시간을 걷다> 20부작이 사장되지 않고,

여기저기 종횡무진 이 방송 저 방송 떠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성공한 프로그램인 겉 같아서

제작진들에게 작은 박수를 보내며 위안을 받는다.

어쩌다가 보니 1992년부터 시작한 방송이

어느 새 서른 몇 해가 흘렀고

가끔씩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말을 듣는다.

고향 사람들이나 초년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수많은 책을 써서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지는 전혀 모르고,

가방끈이 길지 않아서 배운 것도 없고,

그렇다고 인물이 잘 난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어디 반반한 명함 하나 없는 내가,

방송에 자주 나오는 것이 신기하다 못해, 알 수가 없단다.

시골에 사는 사람일 수 록, 책보다는 TV에 나오는 것을

출세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한데,

그들의 눈에는 내가 출세를 했다고 여기는지

가끔씩 길에서 만나면 인사가, ‘얼마 전에 TV에서 밨는데,“

요즘은 TV에 잘 안 나오데.” 그게 인사말이 되는 것이 다반사다.

나는 그때마다 난처하지만, 뭐라고 달리 할 말도 없고,

그렇다고 그들에게 내가 어떤 공부를 어떻게 했고,

어떻게 살았다.’고 설명할 수도 없고,

다른 말로 대신할 수도 없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웃고 또 웃지요.‘

요술 상자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멍청이를 만드는 상자라고도 말하는

방송이나 언론에 자주 나오는 것, 그것을

독일의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는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의한 고찰>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스크린(공연장) 속에서는 멋있고 위대해 보이는 사람도,

가족 입 장에서 보면

부족한 아들이나 남편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내가 그렇다. 속빈 강정이라고,

자식들 입장에서 보면 나는 금 수저나 은수저

물려주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내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어떤 사람들은 언론에 자주 나가다 언론사나 방송국에서

연락이 없으면

그들이 나를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조바심 때문에

마음에 병이 날 정도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나는 매일 떠나기 위해 답사 계획을 짜고

시간만 나면 떠나서 그곳의 사물과 사람들에

흠뻑 빠지기 때문에 그 무엇을 기다려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내가 가서, 내가 겪고, 내가 느끼며

살아가는 삶, 그 삶이 얼마나 즐거우면서도 괴로운 일인지,

그것을 알고서부터 내 인생이 그나마 숨통이 트였고,

내가 가야 할 그 길을 발견했고 나만의 길을 걸어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이 마감하는 그날까지 나에게 주어진 길을

떠돌면서 살리라. 마음먹는다.

그게 내 길이고, 다시 말하면 운명이다.

내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가.? 묻고 또 물으며,

 

 

 

 

2017121일 초하루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