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5

해파랑 길 마지막 구간을 남겨 둔 소회.

산중산담 2018. 4. 26. 20:29

 

해파랑 길 마지막 구간을 남겨 둔 소회.

 

 

세상의 많은 길을 혼자서 걷다가

세상의 많은 길을 여럿이서 걸었다.

걷고 또 걸은 그 길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혼자서 태어나 혼자서 돌아가는 세상

혼자서 걷는 그 길이 얼마나 적막하고 얼마나 쓸쓸한지를

깨닫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걸어가도

결국 혼자만의 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걸어갔던 것은 아닐까?

삶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조각배 같은 섬과 같은 것,

그런 생각이 문득 가슴 한 귀퉁이에서 치밀고 올라올 때마다

떠오르던 글 한편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잔칫상을 받은 듯,

봄 동산에 올라간 듯 들떠 있는데,

나는 혼자 담담하고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며,

아직 웃음조차 모르는 갓난아이 같다.

피곤하여 지쳐도 돌아갈 곳 없는 듯,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이 넉넉하나 나만 홀로 부족한 듯,

내 마음은 어리석은 바보의 마음!

혼란스럽고 어둡구나!

세상 사람들은 밝고도 빛나건만,

나만 홀로 우울하구나.

사람들은 잘도 따지고 영리하건만,

나만 홀로 내 안에 갇혀 불안에 떠네.

나는 바다처럼 출렁이고

바람에 흔들려 멈추지 못하네.

사람들은 모두 쓸모가 있지만.

나만 홀로 둔하고도 촌스럽네,

나 홀로 남과 달리 어머니인 도에서

자양분 구하는 것을 귀하게 생각하네.“

노자老子<도덕경>중 이 부분을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마스페로는

우울한 신비의 고백이라고 말했다.

정유년에 우리 땅 걷기에서 진행했던 해파랑 길

부산 오륙도에서 출발하여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천천히 걸은 그

마지막 구간을 걷기 위해 떠나는 날 신 새벽에

떠오르는 이런 저런 생각들, 그 중, 문득 마지막 구절이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

쓸모가 없고, 촌스럽기 그지없는 내 생에서

그나마 잘 한 것이라곤 바라지 못할 꿈을 안고,

한 발 한 발 걸어간 그 길 밖에 없는데,

그 길이 진정 내가 꿈꾸던 길()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내가 걸어가다가 만난,

우연 같은 필연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운명처럼 길 위에서 대부분의 생을 보냈고,

그 길에서 운명처럼 몇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온 것이다.

내 운명, 부정할 수도 거역할 수도 없는

운명,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길 위에서

남은 생애를 보내리라는 것,

지금 나의 마음이다.

나는 어디로 또 다시 걸어갈 것인가?

 

 

20171215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