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 길 마지막 구간을 남겨 둔 소회.
세상의 많은 길을 혼자서 걷다가
세상의 많은 길을 여럿이서 걸었다.
걷고 또 걸은 그 길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혼자서 태어나 혼자서 돌아가는 세상
혼자서 걷는 그 길이 얼마나 적막하고 얼마나 쓸쓸한지를
깨닫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걸어가도
결국 혼자만의 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걸어갔던 것은 아닐까?
삶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조각배 같은 섬과 같은 것,
그런 생각이 문득 가슴 한 귀퉁이에서 치밀고 올라올 때마다
떠오르던 글 한편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잔칫상을 받은 듯,
봄 동산에 올라간 듯 들떠 있는데,
나는 혼자 담담하고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며,
아직 웃음조차 모르는 갓난아이 같다.
피곤하여 지쳐도 돌아갈 곳 없는 듯,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이 넉넉하나 나만 홀로 부족한 듯,
내 마음은 어리석은 바보의 마음!
혼란스럽고 어둡구나!
세상 사람들은 밝고도 빛나건만,
나만 홀로 우울하구나.
사람들은 잘도 따지고 영리하건만,
나만 홀로 내 안에 갇혀 불안에 떠네.
나는 바다처럼 출렁이고
바람에 흔들려 멈추지 못하네.
사람들은 모두 쓸모가 있지만.
나만 홀로 둔하고도 촌스럽네,
나 홀로 남과 달리 어머니인 도道에서
자양분 구하는 것을 귀하게 생각하네.“
노자老子의 <도덕경>중 이 부분을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마스페로는
‘우울한 신비의 고백‘ 이라고 말했다.
정유년에 우리 땅 걷기에서 진행했던 해파랑 길
부산 오륙도에서 출발하여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천천히 걸은 그
마지막 구간을 걷기 위해 떠나는 날 신 새벽에
떠오르는 이런 저런 생각들, 그 중, 문득 마지막 구절이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
쓸모가 없고, 촌스럽기 그지없는 내 생에서
그나마 잘 한 것이라곤 바라지 못할 꿈을 안고,
한 발 한 발 걸어간 그 길 밖에 없는데,
그 길이 진정 내가 꿈꾸던 길(道)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내가 걸어가다가 만난,
우연 같은 필연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운명처럼 길 위에서 대부분의 생을 보냈고,
그 길에서 운명처럼 몇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온 것이다.
내 운명, 부정할 수도 거역할 수도 없는
운명,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길 위에서
남은 생애를 보내리라는 것,
지금 나의 마음이다.
나는 어디로 또 다시 걸어갈 것인가?
2017년 12월 15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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