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5

가끔씩 무모할 때, 그런 때가 있다.

산중산담 2018. 4. 26. 20:37

 

가끔씩 무모할 때, 그런 때가 있다.

 

지나간 것들이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안개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가 있다.

이미 가버린 것, 다시 올 리 없는 시절의 일들이,

그렇다고 그 시절이 아름다웠던 것도 아니고, 눈물겹도록 서럽고

쓸쓸했던 기억들이고, 무모했기에 가능했던 일인데, 그 기억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것은, 내가 그 순간의 일들을 메모지에 남겼고, 다시 책으로 활자 화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때, 그날, 그 시간에 일어난 일을 다음과 같이 썼었다.

사람이 있으면 길을 물어가야지 ‘1995년도 범죄 없는 마을 봉화군 승부리그래 사람이 많은 곳에서 범죄도 일어나지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사람이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무슨 범죄가 일어나랴. 지도를 보면 아무래도 앞길이 순탄하지는 않을 듯 싶다. 쓸데없는 걱정일까? 그럴 지도 모른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라고 어니 젤린스키가모르고 사는 즐거움에서 얘기한 것처럼 내 걱정은 기우로 끝날지도 모르고 어쩌면 사실로 나타날 지도 모른다.

길가의 집에 들어가 심규현(62)씨를 만나 승부역을 지나서 강 길을 따라가는 것이 가능하겠느냐고 묻자 가능하지 않을 것이란다. 돌아가는 것이 좋고 그렇잖으면 산길 18km를 몇 시간이고 넘어가야 한다는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며 또 하나 방법은 밤 8시 넘어 열차가 남아있으니 그 열차를 타고 가란다. 막막하다. 시간은 450분이 넘었고 두 시간만 지나면 어두워질 것이다.

하여간 승부 역에 들어가서 최종결정을 내리자 강 길로 내려가자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15명 이상 통과금지라고 쓰여 진 출렁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낙동강은 더없이 아름답다.

텃밭이 세 뼘 밖에 되지 않는다.”하는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승부 역에 들어가자 역무원 두 명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맞는다.

나는 내가 찾아간 이유를 얘기하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저녁 820분에 떠나는 통일호를 타고 분천까지 가는 것과 하나는 터널 몇 개와 교량을 건너는 것이 있는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어느 것이던 선택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철도법상 철로를 걷는다는 것 자체가 위법이고 또 그동안 545, 630분 열차와 몇 개의 임시열차가 있기 때문에 원칙상으로는 못 가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터널만 문제가 되지 철교는 괜찮습니다. 예전에는 철교만 있었는데 지금은 그 옆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밤중에 기적을 울리는 기차를 타고 싶은 환상을 품고 있다.”라고 말한 월리 넬슨의 말처럼 나 역시 열차를 타고 가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만, 낙동강을 따라서 걷는 내가 열차를 탄다거나 다시 되돌아간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철길을 따라 갈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자 터널 길이가 600m가 되는 승부터널(각금굴이라 부름)300m쯤 되는 터널 그리고 철교들이 많이 있는데 가능하겠느냐며 혹시 랜턴을 준비했는가? 고 묻는다. 그러나 강을 따라 걷다가 어두우면 아무 곳(여관, 민박=음식점)이나 자리 잡고 잠을 청했던 내게 무슨 랜턴이 있겠느냐고 대답하자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결정하란다. 그래 갈 수 있을 테지 680m라면 보통의 내 걸음으로도 10분이면 통과할 테지 시계를 보자 515분 승부터널 입구까지 10분 나머지 15분에서 20분 안에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서둘러 인사를 건네고 나는 철로 길을 재촉한다. 강물은 속이 타는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다는 듯이 유유히 흐르고 내 마음만 급하다. 천천히 걸어가리란 내 생각은 이렇듯 또 속절없이 꺾이는구나.

죽느냐 사느냐 그게 문제로다

드디어 터널 앞에 다다랐다.

한발 한발 천천히 걸어가자 그러나 웬 걸 50m쯤 들어갔을까. 코앞도 보이지 않는다.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불현 듯 무서움이 밀려온다. 갈 수 있을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캄캄한 어둠 오직 내가 앞으로 가고 있다는 막막한 확신 하나로 나는 한발 한발 내딛을 뿐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가 걸음을 멈추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움직임의 세계에서 모든 것이 정지된 세계로 나는 들어온 것이다.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철커덕 소리 들리고 나는 화들짝 놀랜다. 알고 보니 자동카메라가 닫히는 소리다. 정신 바짝 차리자 한발 한발 떼어놓는데 그 넓은 좌우측의 철길이 왜 그렇듯 양쪽 발에 차이는지, 이러다가 넘어지거나 쓰러져 다치기라도 하면 나는 끝장이다. 문득 기차가 앞에서 오는듯한 착각이 들고 어떻게 할 것인가. 벽에 온 몸을 붙인 채 숨죽이고 있거나 철길 가장자리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을 것인가.

감이 서지 않는다. 다행히 그 소리는 착각이었고 온몸에 땀이 흥건하다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무사히 이 죽음의 터널을 빠져나가는 수밖에 나는 너무 경솔하지 않았는가. 아무도 가지 않는 그 강 길을 따라 걸으며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강물을 보고 싶다는 그 열망 하나로 너무 무모한 선택을 하지 않았는가. 불현듯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르고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

어떻게 한다. 이러다 쓰러져 다치게 되면 죽을 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죽음이 그토록 두려운가, 아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거나 가난에 찌들어도 천대를 받아도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좋다라는 말 또는 저승 백년보다 이승 일 년이 좋다는 우리네 사생관을 나는 믿지 않는다. “죽음이란 저기 또는 여기에 있지 않고 그는 모든 길 위에 있다. 너의 그리고 나의 내면에 깃들어 있다는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삶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죽음 또한 아름다운 것이리라 생각해왔기 때문에 어느 때 죽음이 닥치더라도 나는 그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리라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한발 한발이 천근만근이 되는 듯싶고 내 발자국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울려온다. 무섭고 외롭다. 나는 소리 내어 읊조린다.

신정일! 너는 잘할 수 있어! 신정일! 너는 잘해낼 거야. 내 소리에 내가 놀라는 시간이 지나고 멀리선 듯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희미한 빛 그 빛을 따라가는 그 순간이 얼마나 길었던가. 드디어 나는 승부터널 마지막 지점에 서있었고 그때까지 열차는 오지 않았다.

터널을 벗어나 맨 처음의 침목을 밟으며 나는 쟝 그르니에의 산문지중해의 영감중 한 부분을 떠올린다. “삶이 때때로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삶의 시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그 삶은 언제나 매일 매일 다시 시작 된다나는 그 말처럼 다시 철길에서 발을 때고 다시 철길을 걸어갈 것이며 어느 날 또 다시 이런 순간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후엔 TS 엘리어트의 시 한 구절을 꼭 기억할 것이다.

근심할 것과 근심하지 말 것을 분별케 하소서, 조용히 앉아 있기를 가르쳐 주소서

내가 지나온 승부터널을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기고 다시 철교를 지나자 눈빛처럼 희디흰 구절초꽃이 희망처럼 보였고, 나는 조금 전까지 생사를 넘나들었던 생각을 잊고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 강가에 늘어뜨린 채 피어있던 한 포기의 구절초는 가슴 조렸던 내 마음의 상처를 씻어 내주는 듯 싶었다.

나는 15분 동안 그 터널을 지나면서 10년 동안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온갖 떠올랐던 상념들이며 온 몸을 흘렀던 땀들은 내 생이 다하는 날까지 내 마음 속에 남아있을 것이라 믿지만 그 역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어느 날 잊혀지고 말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서는 안 된다고 말리던 길 그 길에서 나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는가, 나는 철교 아래로 흐르는 강물소리 속에서 무언가 다른 소리를 듣고 싶지만 물소리는 물소리일 뿐인데,“

오래 전, 그러니까 17년 전 가을, 2001년의 일이다. 혼자 떠나서 혼자 걸었던 낙동강 기행, 다시 그런 길에 내가 오를 수 있을까?

혼자 걷고, 혼자 자고, 혼자 밥 먹고, 걸었던 열엿새의 여정,

그 길을 2008년에 걷고, 다시 또 다시 걸어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이 느낌, 나는 언제까지 이 느낌 속에 살아갈 수 있을지,

 

 

20171219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