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
매년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년말年末, 연시年始에 집을 떠나서 떠돌다가
돌아오기 시작한지가 벌써 수십 년이다.
어디를 가든 내 집 같고, 집은 집이지만 오히려 집이 타지他地 같은 생활,
어딜 가도 낯설지 않고 고향처럼 포근한 것은
이미 내게 있어 나라의 경치나 사물들이 내 몸과 같이 되어서 그런가,
내가 자연이 되고, 자연이 내가 되는 경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나라 이 땅을 무수히 떠돈 사람은
다 나만큼 자연스럽게 자연에다 몸 전체를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경치는 어떻다고 할까?
우리나라 산수는 세계에 드문 경치다. 그 산이 그렇지,
그 바다가 그렇지, 어디 가도 시냇물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언제 하늘을 우러러도 늘 파란 하늘을 볼 수가 있고,
늘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다. 어느 웅덩이의 물을 떠 마셔도
다 달고 가슴이 시원하고, 어느 잿배기의 바위를 가 만져도
다 묘하고 혀를 차게 한다.
금강산을 세계의 자랑이라 하지만, 하필 금강산뿐일까?
가는 곳마다 시요, 그림이다.”
작고한 함석헌 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 실린 글이다.
가는 곳마다 시고, 그림이라면 가는 곳마다 들리는 소리가 음악이 아니겠는가?
천상에서 천사들이 내는 음악이 새들의 노래 소리,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라면 버스가 흔들리면서 앞으로 나가는 달려가는 소리도
천사의 소리가 아닐까?
다시 또 며칠간 집을 비우고 떠나기 전에
같이 돌아다닐 도반들에게 감사함을
오래 전에 작고하신 함석헌 선생님의 시 한편으로 전하고 싶다.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마음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말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어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 선생님의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라는 시다.
그런 사람을 가진 사람은 행복할 것이고,
그런 사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이제라도 가져야 할 것이고,
그런 사람과 함께 걸으면 그보다 더 행복한 걷기가 또 어디 있겠는가?
다시 욕심을 더 부려서 박동환선생의
<서양의 논리, 동양의 마음>속의 내용을 더 전하고자 한다.
“어디서 사물의 정체를 찾을 것인가. 나타난 사물 자체에서
사물 되게 하는 자를 찾을 수 있는가.
세상에 나타난 어떤 사물이 자기로 하여금
그 사물 되게 하는 바탕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가.”
그 사물의 바탕을 찾기 위해서 두리번거려야겠다.
내가 가는 그 길 마다마다에서,
2017년 12월 29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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