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다가 돌아갈 것인가?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엘 가면 어딜 가나 음식이 진수성찬이다.
모든 사람들이 잘 먹고 못 먹고를 떠나
주문만 하면 금세 한상 가득 차려 나오는 음식을 보면 마음부터 배가 부른데,
실상은 무엇을 먹어야 할지 난처할 때가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맞지 않는 향이나 향초가 가득 들어 있는 음식을
처음부터 먹고 나면 모든 음식에 손이 안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잖아도 비위가 약한 나는 호텔에선 흰죽이나 조죽을 즐겨 먹고,
식당에선 흰 밥에 물을 말아서 먹는 경우가 대다수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고, 중국에 가면 중국의 법을 따라야 하는데,
내가 정말로 배가 고파 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도 어느 때부터
일부 계층만 빼놓고는 먹는 것에서 해방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식당도 다 먹지 못하고 남겨 놓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렇다면 옛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내가 좋아하는 식사는 수많은 하인들이 준비하고 지켜보고 여러 날 전에 주문하고 여러 손이 차려주는 식사가 아니라, 간단하고 어디서나 마련할 수 있고, 공들이거나 값비싸지 않고 지갑에도 몸에도 부담스럽지 않으며 들어간 길로 도로 나오지 않을 정도의 식사라네.”
이탈리아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의 <행복론>에 실린 글이다.
나 역시 그렇다.
값은 고하로 치더라도, 번거롭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먹는 것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세상 풍조를 보면 세상이 온통 먹자판으로 돌아간 듯 싶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연회장에만 가면 항상 얼마간은 참지 못하고 배불리 먹지 못할까 두려운 듯 허겁지겁 먹어댔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찌 볼까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면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왜 느긋하게 먹지 못하는 걸까? 나는 왜 조금 덕 먹지 못할까? 문명사회에서 많이 먹는 것은 교양이 없다는 표시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귀한 집 출신으로 먹는 태도가 품위 있다고 느끼게 할 수는 없을까?(...) 지난 삼십 여 년 간 나의 먹기 경력을 회상해보면, 스스로가 돼지인지 개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계속 쿵쿵대며 영역 안을 돌면서 먹을 것을 찾아 이 밑바닥 없는 구멍을 채워 나갔다”
중국의 소설가로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의 <먹는 일에 관한 이야기 둘> 에 실린 이야기와 같이 먹는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아 있다.
어차피 한 세상 사는 것, 잘 먹고, 잘 놀다가 가자는 사람도 있고,
먹는 것에 초연하게 살면서 그 외의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수백만 금金을 가지고 싶은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고 싶은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큰 아들 미짜와 같이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아니면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살아갈 시간은 짧고 해야 할 일은 많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탐닉이란 먹는 것에 대한 지나친 욕망이나 사랑이다.”
스피노자의 말이다.
먹는 것 만이라면 이해가 되겠는데, 돈과 권력, 명예까지 다 가지려고
애를 쓰다가 말년이 어두운 사람들을 보면,
욕심을 버리는 것, 그것에 가장 육신을 편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는 그 무엇도 가지고 돌아갈 수 없다.
그것만이 확실한데, 도대체 왜 그렇게 사는 것일까?
2018년 1월 26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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