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5

추억은 건드리는 모든 것을 미화시키는 마술사다

산중산담 2018. 4. 27. 00:19

 

추억은 건드리는 모든 것을 미화시키는 마술사다

일찍이 러시아의 국민 시인 푸슈킨은

추억은 건드리는 모든 것을 미화시키는 마술사다

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럴까

그때 그 순간은 잘 모르는데,

지나간 모든 것은 그리움이고,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지난 주말의 남도 답사만 해도 그렇다.

그렇게 바람 불고, 눈 내리고, 휘몰아오는 바람 소리에 다시 눈이 내리고

내리다 멎은 그 산 길에서 손과 발이 얼어붙을 듯한

그 추위를 헤치고 다닐 때는 춥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이틀도 지나지 않아서 그 시절이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승화되는

시간의 마술, 그렇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의 의미가 있고,

그래서 더욱 연연해하는 것이 바로 지나간 세월이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속에서 추억을 불러일으켜 세우고

나를 감동시킨 시간들이란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향락과

비할 데 없이 생생한 쾌락의 시간들이 아니다.

그 짧은 열락과 열정의 순간들, 그러한 순간들이

아무리 생생히 빛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바로 그 생생함으로 인해??,

그 순간들은 너무나 드물기도 하고, 너무나도 재빠르게 지나가므로

도저히 어떤 하나의 상태를 이룰 수가 없다.

나의 마음이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행복이란 결코

이러한 덧없는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도 영원한 어떤 상태이다.

그 상태는 그 자체로는 강렬한 것이 전혀 없지만,

그 상태의 지속성은 매혹을 낳고,

마침내 그곳에서 지고의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장 자크 루소가 쌩 피에르 섬에서 느낀 자신의 행복에 대한 묘사이다.

루소가 그 섬에서 살고 있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행복이

그 시간이 지난 뒤의 회상 속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다움으로 채색되어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청춘이 지나가면 추억밖에는 잃어버릴 것도 없다.

후회 없이 과거를 회상하며, 불안감 없이 미래를 내다보면서

그 때 우리들은 안식할 수 있는 어둠을 기다리며,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른다. 오랜 나무를 땔감으로 쓰고,

오랜 포도주를 마시고, 오랜 친구를 신용하고,

오랜 작가를 잃으라. 노인을 활용할 줄 알면 즐거움이 가득하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노년은 특히 명예의 관을 쓰고 있을 때에는

청춘의 모든 감각적 쾌락보다 더 가치 있는 권위를 즐긴다.”

소포클레스는 그 당시 이렇게 노년을 찬양했지만

오늘날의 노년은 그렇게 즐겁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다.

왜냐 세월이 인간의 삶을 지치게 만들고,

그리고 변모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씩 젊은 날을 회상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나이든 사람들의 공통분모라면 서운한 말일까?

말없이 추억은 내 앞에 그 긴

두루마리를 펼친다.

그리고 혐오스럽게 나의 삶을 읽으며

나는 전율하고 저주한다.

나는 쓰라린 한탄을 하며 눈물 흘린다.

그러나 그 슬픈 행동들을 나는 씻어낼 수 없다.“

다시 푸슈킨의 추억에 대한 시 한 편이다.

두루마리를 펼친 추억 앞에서

잔잔히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행복한 삶이리라.

그런데 가능할 것 같지만 쉽지 않은 것이 그러한 삶이다.

어떻게 살아야 그런 삶이 가능할지,

그 해답을 발견하지 못한 채 가는 세월이 가끔씩 두렵다.

 

 

201827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