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설레임이고, 그리움이다.
입춘이 지나고, 설도 지나고 그리고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
그새 겨울의 끝 무렵이다.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낙동강으로 떠나게 될 주말이
벌써부터 그립다. 그것은 멀고 먼 길을 걷지 못한 겨울 잠 때문이리라.
하루도 아니고, 이틀, 그보다 더 오랜 나날을 천천히,
아니 부지런히 걸어야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오랜 나날을 길에서 보낸 습관 탓이고,
그 습관이 품성이 되어 나를 이만큼이나마 건강하게 살게 했다는 것,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길에서 길을 잃고, 길을 잃은 뒤에야 새로운 길을 찾으며 보낸 세월,
월든의 숲 속에서 스스로를 찾아 나섰던 소로의 말은 그래서 큰 울림이 있다.
“길을 잃고 나서야 세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하며,
주위의 위치와 우리의 무한한 범위를 깨닫기 시작한다.“
그렇다. 길은 도처에 있고, 그 길은 저마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태어나서 돌아가는 날까지 그 길을 걷는 나그네이자 순례자들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으며 판단은 어렵고 기회는 쉽게 달아난다.
행동하기는 쉽고 생각하지는 어렵다.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불편하다.
모든 시작은 즐겁고 입구는 기대의 장소이다.”
괴테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에서 한 말과 같이
어렵고도 불편한 생이 생각보다 긴 것 같지만 짧은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순간순간, 그 삶의 기로에서 쓸쓸한 것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우주의 순환 속에서
인간의 삶은 무한하지 않고 유한하며, 그래서 불가해한 삶에
더 애착을 가지기도 하고, 가끔씩은 포기하고픈 열망에 몸을 부르르 떨 때도 있다.
그 때, 가슴 깊은 곳에서 계시와 같이, 아니 함성과 같이 다가오는 말이 있다.
“무서운 순간들 중에 한 계시가 나에게 스며듭니다.
모든 것은 시작도 끝도 없고,
아무런 의식도 없는 위험하고 공허한 유희일 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곧 필연의 수레바퀴에 스스로의 멍에를 달아맵니다.
그리고 나의 근처에서 우주는 운행됩니다.”
카잔차키스의 속삭임 같은 전언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도 아니며,
세 번 째로 운명처럼 한 발 한 발 걸어가야 할, 낙동강,
그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들, 사람들,
그 것조차도 거부할 수 없고, 그래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므로 운명이자 필연이라고 여기며 가야 할 그 길,
그 길을 나는 견유학파 사람들의 명제를 떠올리며 걸어가야겠다.
“행복은 외적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 삶에서 온다.”
내가 선택한, 그래서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불편함도
그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걸어 갈 그
낙동강, 생각만 해도 지금부터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가?
낙동강을 한 발 한 발 걸어간다는 그 사실이,
2018년 2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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