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고산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고산성을 걷습니다.
남고산성을 아십니까? 전주의 동쪽에 자리 잡고 전주를 지켜보는 산성이 남고산성입니다. 그러나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른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 속담처럼 사적 제 294호로 지정되어 있는 남고산성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 산성을 한 바퀴 돌아본 사람은 더구나 없습니다.
후백제를 창건한 견훤이 쌓았다고 해서 견훤산성, 또는 고덕산성이라고 부르는 이 성은 성의 둘레가 약 5.3km쯤 되는 포곡식 산성입니다. 고려 말의 충신이자 문장가인 정몽주가 시를 남긴 만경대와 천경대 등의 명소와 전주팔경 중의 한 곳인 남고사가 이 성안에 있습니다.
서울 경기 사람들이 남한산성을 즐겨 찾으며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어 남한산성 사랑운동을 벌인 결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전주나 전북 지역 사람들은 남고산성을 알지도 못한 채 주말이면 모악산이나 다른 산만 오르기 위해 갈 길이 바쁩니다.
몇 년 전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모임>에 초청을 받아 남한산성에서 강연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강연을 끝내고 셀 수도 없이 답사한 남한산성을 그들과 함께 답사하며 줄곧 떠올랐던 곳이 남고산성이었습니다. 전주를 굽어보는 남고산성을 전주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답사했을까를 생각하면 못내 가슴이 아파지지만 어쩌겠는가?
아직도 우리 지역의 대표적 산성인 남고산성이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은 보여주면 안 될 알 수 없는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남고산성(南固山城)은 전라북도 전주시 동서학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축산성으로 사적 제 29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둘레는 3,024m로 현재 성문지와 장대지(將臺址) 등의 방어시설이 남아있습니다. 일명 견훤산성(甄萱山城) 혹은 고덕산성(高德山城)이라고도 불리는 남고산성은 고덕산의 서북쪽 골짜기를 에워싼 포곡형(包谷形) 산성입니다.
그렇다면 성을 쌓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요? 모든 성곽은 원래 맹수나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흙․나무․벽돌 등으로 높이 쌓아올린 담장과 같은 장애물을 말합니다. 또한 성곽(城郭)이라고 부르는 것은 내성과 외성의 전체를 말하는 것이고, ‘성(城)’은 내성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곽은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축조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기원전 1~2세기 경부터 이러한 시설물들이 나타났습니다.
『사기(史記)』를 보면 한(漢)이 위씨 조선(衛氏朝鮮)을 공격하는 부분에 위씨 조선의 도심인 왕검성(王儉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성곽을 쌓는 기술은 곧 국가발전의 척도로 여겨질 만큼 국가 차원에서 중요시 했던 것이었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세 나라 모두가 국가 차원에서 국가의 중요인물을 책임자로 내세운 다음 15세 이상의 남녀를 징집하여 성을 쌓았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국가에 성을 쌓는 전담부서를 두어 성을 축조하였습니다.
성곽은 대체로 성곽을 축성한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는데 나무를 땅에 가로 세로로 단단하게 엮어 방어시설을 설치한 성이 목책성(木柵城)이고 흙으로 쌓은 성은 토성(土城)입니다. 돌로 쌓은 석성(石城)과 흙과 돌을 함께 사용하여 축조한 토석혼축성(土石混築城), 벽돌로 쌓은 전축성(傳築城) 등으로 분류되며 성곽이 축조된 지형에 따라 산성(山城), 평지성(平地城), 평산성(平山城), 장성(長城) 등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남고산성은 901년에 후백제의 견훤이 도성의 방어를 위하여 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성벽은 임진왜란 때 전주부윤 이정란(李廷鸞)이 이곳에 입보(入保)하여 왜군을 막을 때 수축하였습니다. 그 뒤 1811년(순조 11)에 관찰사 이상황(李相璜)이 중축하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박윤수(朴崙壽)가 관찰사로 부임한뒤 완성한 것입니다. 숙종 때 완주소양의 위봉산성(威鳳山城)에 이어 진(鎭)이 설치되었고, 성내에는 진장(鎭將)이 머무르는 관청과 창고․화약고 등이 있었습니다. 남북에 장대(將臺)가 있으며, 문은 동쪽과 서쪽에 있었습니다. 서쪽에는 암문(暗門)이 하나 있었고, 동서남북에 각각 하나씩 포루(砲樓)가 있었으며, 특히 천경대(千景臺)․만경대(萬景臺)와 같은 절벽이 있는 자연적 요새를 이용하였다.(...)남고산성에는 남고사(南固寺)와 관성묘(關聖廟)가 있고 조선후기의 명필로 알려져 있는 창암 이삼만의 글씨로 남고진의 내력을 기록한 남고진사적비(南固鎭事蹟碑)가 남아있습니다.
1911년 발간된 ‘완산지’에는 남고산성이 완성되고 진이 설치된 시기가 1813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고산성을 따라가는 길은 고덕산으로 가는 등산로이고, 고덕산에는 <삼국유사>에 고구려 불교가 남하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대동사상 기념사업회에서 <남고산성을 사랑하는 모임>을 발족하여 남고산성을 답사하고 보존하며 사랑하는 운동을 펼치고자 합니다.
매월 한 차례 이상씩 남고산성이나 동고산성을 비롯한 역사적 공간을 답사하며,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과 역사를 올곧게 이해하고자 하니, 이 모임에 많은 참여바랍니다.
남고산성을 첫 번째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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