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거나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거나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아니,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문득 펴는 책이 허균이 찬한 <한정록>이다.
“사마온공이 독락원獨樂園을 지어 아침저녁으로 거기에서 쉬었다.
그러다가 숭산崇山의 첩석계疊石溪를 구경하고는 그곳을 좋게 여겨
다시 그 근처의 땅을 사서 별관別館을 지었다.
그러나 매번 왔다가 수일이 못되어 돌아가
항상 머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시를 지었다.
“잠시 왔다 가곤 하니 도리어 손님 같고
돌아가 버리니 집 같지 않네.“
이렇게 시를 지었으니 공公은 참으로 가고 머무는데 초탈하였다.
<한정록> 제 6권 ‘저기실楮記室’에 실려 있다.
송나라 사마광이 말하였다.
“정신과 육체가 피로할 적에는 낚싯대를 던져 고기를 낚거나,
옷자락을 잡고 약초를 캐거나, 개천에 물을 돌려 꽃밭에 물을 대거나,
도끼를 들어 대나무를 쪼개거나, 뜨거운 물로 손을 씻거나,
높은 곳에 올라 사방을 관망하거나, 이리저리 한가로이 거닐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기거나 하면 좋다. 그 때 밝은 달리 떠오르고
맑은 바람이 저절로 불어오면 움직이고 멈추는데 구애가 없어
나의 이목폐장耳目肺腸이 모두 나의 자유가 되므로
마냥 고상하고 활발하기만 하여, 이 하늘과 땅 사이에 또 다시
그 어떤 낙이 이를 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균의 <한정록>에 실린 글이다.
나는 어떤가? 시내버스를 타거나 먼 거리는 걷고, 가까운 거리는 택시를 타는
나의 지론에 따라 택시를 타고, 서점에 들러 이 책 저책을 기웃거리고,
여기저기 아무 생각 없이 거닐기도 하고,어떤 때는 집안 구석구석 청소를 하기도 한다.
그나마 매주 밖으로 나가서 이 나라 이 땅을 헤매고, 헤매다가 돌아오는 것,
그 여러 것들이 나를 맨 정신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길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길에서 길을 찾기도 한다,
길은 인간에게 숙명이며, 근본이다.
나는 지금 길 위에 서 있다.
광대무변하게 펼쳐진 길,
길 위에서 나는 행복한가? 불행한가?
2018년 3월 3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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