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6

인생을 사는 것이 순전히 운이라는데,

산중산담 2018. 4. 27. 13:52


인생을 사는 것이 순전히 운이라는데,


 

인생을 살다가 보면 사는 것이 순전히 운이고,

요행일 때가 많다.

어느 순간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운이고,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도 운일 때가 많다. 사는 것이 그러할 진대,

여행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은 말해 무엇 하랴,

하루 일과가 그렇고, 하루 몇 시간도 그렇고,

어떤 때는 분초를 다투면서 변화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이번 울릉도 답사만 해도 그렇다.

강릉에서 울릉도까지 그 출렁이는 높은 파도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무사히 도착했고, 점심을 먹은 뒤 곧바로 독도로 출발해서 접안을 하고

무사히 독도 답사를 마쳤는데, 우리보다 먼저 출발했던 배는

접안도 못하고 한 바퀴 독도를 돌고 나왔다고 하고,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배는 기관실에 물이 들어오는 사고를 당해

독도에 접안도 못하고 밥도 못 먹은 채

해군함정의 보호를 받으며, 밤 열한시가 넘어서야

울릉도로 귀환했다고 하니 승객들이 배에서 보낸 시간은

악몽이고 지옥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었겠는가?

이래서 인생을 사는 것이 순전히 운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운이 좋아서 독도 답사를 무사히 마치고,

저동에서 도동까지 행남 옛 길을 걸었고,

이른 아침부터 저동 내수전에서 천부리까지 가는 우산국시대의

옛 길을 걸으면서 명이나물, 고로쇠, 큰 연영초꽃과 섬 천남성과

무리지어 핀 동백꽃 사이를 휘적이며 걷고 돌아오니 밤 열한 시반

무사히 돌아와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나의 운이 좋다는 것이 아닐까.

대체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가위 요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죽는 것이 공교롭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루 중에도 위태로움에 부딪치고 환난을 범하게 되는 경우가

몇 번이나 되는지 알 수 없으나, 단지 깜빡하는 사이에

스쳐가고 잠깐 사이에 지나쳐 가는 데에다

마침 귀와 눈의 민첩함과 손과 발의 막아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던 까닭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사람들도 또한 마음에 거리낌이 없이 마음대로 나다니고,

당장 저녁에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 까 하는

따위의 근심이 없게 된 것이다. 진실로 만일 사람마다

항상 뜻밖에 무슨 변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고

근심을 품기로 한다면 무참할 지경으로 두려움에 싸여

비록 종일 문을 걸어 닫고 눈을 감고 들어 앉아 있더라도

그 걱정을 감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연암 박지원이 그의 제자였던 이몽직李夢直

남산에서 활쏘기를 연습하다가 잘못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은 뒤 쓴 애사이다.

이몽직은 이순신의 후손으로서 연암의 글에 따르면

어려서는 곱상스러웠고, 장성해서는 명랑해서 좋았다는데,

어떻게 그 삶과 죽음의 운수를 알랴?

초정과 연암을 따라 함께한 그 세월을 얘기하는

연암의 쓸쓸한 표정이 눈에 선하다.

박지원의 글처럼 우리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순전히 요행이다.

길은 길대로 하늘은 하늘대로

열차는 열차대로 먹는 것 잠자는 것 모든 게

사는 것이 운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인생의 운이 언제까지 이만큼이나마 좋을지 알 수 없다.

내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떠돌아가

어느 날 문득 하늘에서 부르면 가야 하리라.

지나고 나니 지난 이박 삼일의 여정이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가고 바다도 산도 꽃도, 사람들도

봄날 하룻밤 꿈과 같이 아득하기만 하다.

이렇게 삶은 오고 또 가는 것인가?

 

201942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