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벽, 대 바람 소리에 꽃잎이 떨어지고,
“바람은 자는데 꽃은 오히려 떨어지고,
새는 울건만 산은 다시 그윽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옛 사람의 시다.
움직이는 가운데 고요가 있고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는 것,
그것이 세상이고, 세상의 아름다움이다.
그렇다면 바늘하나 떨어지는데도
천지가 무너져 내리듯 들릴 것 같이
문득 들리는 소리는 무슨 소리일까?
“대 바람 소리, 들리더니, 소소한 대 바람 소리,
창을 흔들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금은 구름이 오고 가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의 ,<낙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그릴지언정,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 그렇다.
아무리, 대 바람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
신석정 시인의 <대 바람 소리>가
이미 지나간 시간에 내가 거닐었던
울릉도 행남 옛길의 대 바람 소리처럼
가슴을 열고 들어오고,
“삼삼히 들리는가, 봄이 봄이 오는 소리,
못 참고 뛰쳐나가, 가지마다 귀 듣는다. 꽃수렌가,
말발굽소린가, 아리아리 안타까울 뿐,”
유안진 시인의 <대춘待春>을 떠올리다가 보면
문득 어둠 속을 목적도 방향도 없이
뛰쳐나가 헤매고 싶기도 하고,
“어디서 오는가. 그 맑은 소리,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데,
샘물이 꽃잎에 어려우 듯이,
촛불이 바람에 흔들리누나.
영원은 귀로 듣고, 찰나는 눈앞에 진다.”
조지훈 시인의 <대금>소리가
은은하게 혹은 목이 터지게 들려오기도 하는 봄밤,
내 잠은 어디론가 훌쩍 달아나버리고,
눈만 깜빡깜빡,
이 새벽, 대 바람 소리에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 들리는 듯 하고,
그리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채는 소리,
먼 듯 가까운 듯 어디로 퍼져 나가시는가?
2018년 4월 3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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