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리운 남고산성 길,
금세 사월인가 싶었는데, 일주일이 지나고,
금세 사월도 가고 오월이 오리라.
유월이 가면 한 해의 절반이 다 지나가버리고,
그리고 금세 한 해가 다 지나가리라.
이렇게 가면 안 되는데, 이를 어쩌지,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서,
걷기로 한, 아니 걸으면서 보존하고, 사랑하기로 한,
‘남고산성을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어 걸었던
남고산성은 온통 꽃 천지였다.
산 벗 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 너머 산에도 꽃 산이고,
길도, 시내도 피어난 꽃들,
천천히 걸으며 만나는 남고산성,
이렇게 쌉쌀하면서도 아릿한 역사의 숨결이
겹겹이 쌓여서 가슴 속을 헤집고 밀려오는데,
이런 길을 어째서 안 걷고 다른 길만 걷는지,
등잔 밑이 어두워서 그런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있지만
정작 낫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가,
산성을 걷는 사람들은 석 달 가뭄에 콩 하나 나는 것처럼
드물고 드물기만 하지?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 라고 E. H. 카가 말했던 것처럼
역사의 현장에 서면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이
문득 되살아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소리를 듣기가 싫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이 땅을 살다간 사람들, 견훤도, 정여립도, 그리고
아무개, 아무개도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것일까?
그렇지, 항상 남의 떡을 커 보이는 것이고,
알고 있는 사람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센찮게 보이는 법이지,
“권하건대 그대여, 고향에 가지 마오.
고향에서는 도를 이룰 수 없네.
개울가의 늙은 저 할머니는
아직도 내 옛 이름을 부르는구나.“
마조의 말이고,
역사가 원래 그런 것이지,
어쩌겠는가, 이렇게 저렇게 모인
우리가 일당 백, 아니 일당 천,
이 산성을, 이 땅을 불고 지나는 바람을
사랑하다가 보면 ‘처음엔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하지 않을까?‘
하고 걸으며 나를 돌아보던 하루도
이젠 지난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눈앞에 삼삼한 그 남고산성,
천경대, 고덕산 가는 길, 억경대, 만경대,
그리고 관우를 모신 시당 관성묘,
가끔씩 아니, 문득 생각이 날 때면
걷고 또 걸으며 그 남고산성을, 아니 이 땅의 역사를,
사랑하고 보듬어야겠다.
이 나라를 스치고 지나간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2018년 4월 9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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