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6

남의 뒤에 설 줄을 알아야 제대로 처신한다.

산중산담 2018. 4. 27. 13:58


남의 뒤에 설 줄을 알아야 제대로 처신한다.


 

열자는 호구자림에게 배웠다.

한 번은 호구자림이 말했다.

남의 뒤에 설 줄을 알아야 제대로 처신한다고 할 수 있다.”

열자가 물었다.

뒤에 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자네 그림자를 돌아보게나. 그러면 알게 될 것 일세

열자는 그림자를 돌아다보았다.

그리고 물체의 형태가 굽으면 그림자도 굽어지고,

그것이 곧으면 그림자도 바르게 나타남을 보았다.

그렇다면 곡직曲直은 형태에 있고,

그림자에 있지 않으며, 굴신屈伸도 남에게 달렸을 뿐,

나에게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뒤에 서서 남의 앞에 나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열자> ‘설부.’편에 실린 글이다.

 

살다가 보면 패했다고 생각했던 것이

세월을 견디다가 보면 이겼던 것을 졌다고 생각했음을

깨닫는 경우가 있고, 이겼다고 생각했던 것이

세월 속에서 패한 것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알 수 없는 세상의 일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길을 걷는 것도 마찬가지다. 바쁘게 설치는 사람이 허겁지겁 걸어가다가

일찍 지쳐서 허우적거리며 뒤쳐지는 경우도 있고,

천천히 세월아, 네월아! 하고 가는 사람이

날이 저물 때에는 지치지도 않고 먼 길을 걸은 경우도 있는 것이다.

 

어디 걷는 것만 그러하랴.

살아가는 삶의 도정에서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 하다.

 

이기는 것이 꼭 이기는 것만이 아니고

지는 것이 꼭 지는 것만이 아니다.

진리가 진리인 것은 그것이 참으로 진리이기 때문이다.

 

<열자>에 실린 글과 같이 뒤에 서서 남의 앞에 나가는 삶,’

말 그대로 겸손한 삶,

그런 삶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나날,

이런저런 삶의 의문점을 가지고 살면서 풀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삶을 살고 있으니,

 

그렇다면 길을 걸을 때 어떻게 걸어야 하는가?

무조건 앞으로만 걷지 말고, 가끔씩 뒤를 보고 걸을 것,

내가 지나온 풍경을 바라다보면 지나온 나의 삶도

동시에 보이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걸어가야겠다.

동양의 <병법>에도 실려 있지 않은가?

 

뜻이 뒤에 있고 붓이 앞에 있으면 패하고,

뜻이 앞에 있고 붓이 뒤에 있으면 이긴다.”

 

앞서서 걸어가는 것만 고집하지 말고,

지금보다 더 해찰을 하면서 걷다가 보면

여태껏 보지 못했던 숨어 있는 사물들이

내 앞에 기적처럼, 불쑥 튀어 나오지 않을까?

 

201846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