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새벽에 일어나 뒤척이며,
며칠간을 두고 돌아다니다가 오니,
이런 일 저린 일이 쌓이고 쌓여,
그 하루를 보내다가 보니
또 다시 새벽이고, 다시 떠날 시간이 멀지 않았다.
자다가 일어나 뒤척이고,
다시 자다가 일어나 뒤척이는 봄밤,
그 봄밤을 옛 시인은 어떻게 보냈을까?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김수영 시인의 <봄밤> 전문이다.
그래, 애가 탈 것도, 그렇다고 서두를 것도 없는 것이
인생이다.
오면 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무엇을 그리, 서두르고 그리고 아쉬워하는가,
지금 이 나이에 달나라를 갈 것도 아니고,
무인도에서 혼자 세상을 관조할 것도 아니며,
더더구나 대통령을 하거나,
허다 못해 통장을 할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냥 가만히 지켜보아도, 아니 눈길마저 주지 않아도
세상은 그냥 그대로 흐르고 흐르는 것이다.
단지 사람의 마음이 변하면서
세상의 이치도 변하는 것을,
나이 들어가면서 깨닫는다.
봄밤도 그렇다.
그냥 그대로 ?躍0? 흘러가는 것이 시간인데,
사람만, 아니 나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가는 시간을 안달하고, 속 태우는 것은 아닌가?
지금은 가만히 침잠하는 시간,
그리고 속으로만 내 마음 속을 거닐며
다독이는 시간, 그렇지 않은가?
사흘간 영덕과 청송, 그리고 영양 등 경상도 땅을 어정거리면서
내가 나를 만나야겠다.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연스레 살고자 하는 나는 과연 자유로운가? (0) | 2019.06.26 |
---|---|
여행에서 돌아와, (0) | 2019.06.26 |
오랜 나날을 길에서 보내다보니, (0) | 2018.04.27 |
방풍죽과 죽순절임을 아시나요? (0) | 2018.04.27 |
녹음 무성한 무릉도원 길을 회상하다. (0) | 2018.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