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절경 화진포에서 새해 일출을 보고 통일전망대에서 금강산을 보다.
동해의 절경 화진포에서 새해 일출을 보고 통일전망대에서 금강산을 보다.
2018년 12월 31일에 출발하여 2019년 1월 1일 새해의 첫 일출을 동해의 절경 화진포에서 보고, 화진포 둘레 길을 걷고서 통일전망대를 가서 금강산 구경을 합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과 한해의 첫날을 동해안의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절경을 함께할 사람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동해안 모래는 빛깔이 눈같이 희고 사람이나 말이 밟으면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쟁쟁하여 마치 쇠 소리와 같다. 특히 간성과 고성 지방이 더욱 그렇다.’라고 이중환의『택리지』에 기록된 지역, 그 가운데 화진포는 특히 고운 모래밭과 푸른 바닷물이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경관으로 한번 찾아왔던 이들의 발길을 다시 불러 모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그곳 화진포 해수욕장에 연결되어 있는 석호, 화진호가 있다. 강물에 실려 온 모래가 바다물결에 맞부딪쳐서 강 하구에 쌓이기를 거듭하여 모래톱을 이루고, 그것이 반도 모양으로 가늘고 길게 바다 쪽으로 뻗어 내리며 만들어진 호수를 석호라고 한다. 화진호는 고청 서낭 전설이 함께 얽힌 곳이다.
김일성과 이승만의 별장이 있는 화진포
‘관동팔경의 정자들은 모두 바닷가에 집을 지었다. 바닷물이 아주 푸르러서 하늘과 하나로 된 듯하며 앞을 가린 것이 없다. 해안은 강변이나 시냇가와 같이 작은 돌과 기이한 바위가 언덕 위에 섞여 있어, 푸른 물결 사이에 보일락 말락 한다.’라고 이중환은 <택리지>에 기록하고 있다. 그의 말을 들어서 일까. 경관이 빼어난 이곳에 한국전쟁 이전에 김일성이 세웠다는 별장이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이 휴가를 보냈던 별장이 남아 있다.
명파리를 통과하다
조선시대 명파역明坡驛이 있었던 명파리에 이른다. 명파 남서쪽에 잔재이라고 부르는 반전半田마을은 1945년에 38선 이북 지역이었다가 1950년 정전협정에 따라 완충지대가 되었다.
마차진리에 이르기 전 통일 안보 교육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교육을 받은 뒤에 7번 국도를 따라 제진리, 사천리, 송현리를 지난다. 그곳에서 통일전망대가 멀지 않다. 통일전망대를 가만가만 오른다. 그 아래 걷고 싶어도 걸을 수 없는, 우리의 발길이 허용되지 않는 북녘 땅이다.
“온갖 것 보러 태어났건만 온갖 것 보아서는 안 된다 하더라.” 괴테의 문장처럼, 마음대로 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곳, 한반도 북쪽 땅이다. 그러나 “발은 땅 위에 있어도 뜻은 구름 위에 있다.”는 옛말처럼 자유로운 영혼이야 어디인들 갈 수 없겠는가?
통일 전망대에서 북으로 펼쳐진 해금강을 바라보는데, 문득 구름이 걷히며 금강산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는 금강산의 모습에 그리움은 더욱 커지고……, 기쁨만큼이나 큰 아쉬움을 안고 전망대를 내려와 다시 7 번 국도를 따라 해변 길로 내려간다. 갑자기 길이 끊긴다. 끊어진 7번 국도는 수풀 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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