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고, 또 피는 남원을 다녀와
남원에 다녀왔습니다.
지리산 자락에서 이름 봄꽃을 보며 고향을 알려주러 간 길,
운봉의 서어나무숲은 아직 헐벗은 나무 그대로였지만
조금 내려온 주천의 용궁마을은 완연한 봄이었습니다.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낸 쑥이며, 머웃대 잎사귀 위로 피어난 산수유 꽃,
그 노란 꽃들이 화사하게 세상을 수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꽃이 피면 그 꽃들에 정신을 놓고 꽃이 되어야 하는데,
이제 막 피어난 꽃들을 보며 시들고 말 것을 염려하는 내 마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던지,
술꾼도 아니면서 꽃을 보며 한 잔 술을 그리다가 문득 떠오른 시가
이백의 <술 한 잔 하면서>라는 시였습니다.
“봄바람 동쪽에서 불어와 휙 가버리고
금 술통에 맑은 술 찰랑 거리네
꽃잎은 펄펄 하염없이 지는데
어여쁜 사람 고운 얼굴 불그레 상기되었네.
동헌 뜰에 핀 복숭아 오얏 얼마나 가랴?
세월은 아랑곳 하지 않고 흘러만 가네
그대 일어나 춤을 추시게
해가 저무네.
젊은 시절 내사 세속과 어울리지 않았던 터
백발이 다 되었다손 탄식할 게 뭐 있으랴!“
나 역시 젊은 시절 세속과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지
세속적으로 놀 줄도 모르고, 그래서 심심하기가
소금도 타지 않은 무국과 같다고 할까?
하지만 세상은 누가 뭐래도 가고 또 가는 것,
흐르는 세월 속에서 못내 아쉬움만 더하는 것이
강물이 흐르면서 넓혀지고 깊어지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왕기王幾의 말이 더 가슴을 치고 지나가는지도 모릅니다.
“외물外物을 추구하느라 얽매어 오고 감을 안타까워하고,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것 없음을 슬퍼하는 것은 세상에서 쓸모없는 것이다.”
어느 날 영문도 모르게 태어났고, 어느 날 문득 돌아갈 것인데,
인생길을 가로막는 것들이 어쩌면 그리도 많은지,
이 밤이 가고 또 하루가 시작되면 또 무엇이 내게 다가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근심들을 던져주고 갈 것인지,
계사년 삼월 스무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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