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특징을 알아맞히는 것이 가능한가?
신기神氣가 있는 무당이나 관상을 잘 보는 사람들만 그 사람의
이모저모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저렇게 1차 적으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빼어난 소설 <백야>에서 주인공 뮈시킨 공작이
예빤친 장군의 집에서 장군의 아내와 세 딸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아가씨들의 얼굴을 본 내 소감을 물었지요?”
흔쾌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젤라이다, 당신의 얼굴은 너무나 행복해 보여요. 세 자매 중에서 가장 호감이 가요. 게다가 아주 예쁘게 생겼어요. 사람들이 당신의 얼굴을 보면 ‘ 저 여자의 얼굴은 착한 누이의 모습 그대로야.’ 라는 소리를 할 겁니다.
당신은 평범하고 명랑해서 다가가면서도. 곧 사람의 속마음을 알아낼 줄 아는 분입니다. 내게 당신의 얼굴은 그렇게 보였어요. 알렉산드라, 당신의 얼굴 역시 아름답고 아주 다정해 보여요, 그러나 당신에겐 보이지 않는 슬픔이 있는 것 같아요. 당신은 분명히 아주 선한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당신 자신은 즐겁지 않은 거예요. 당신의 얼굴 어딘가에는 드레스덴에 있는 홀바인의 마돈나처럼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요. 이게 당신의 얼굴에 대한 나의 평입니다. 어떻습니까? 정확한가요? 조금 전에 나보고 잘 알아맞히는 사람이라고 하셨지요. 그럼 이제는 리자베따 뽀로코피예브나, 부인이 얼굴입니다.
“부인은 모든 면에서, 좋고 나쁜 점을 통틀어 이렇게 연세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어린아이입니다. 이건 그저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확실히 그렇습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저에게 화를 내시는 건 아니겠지요? 제가 어떤 사람들을 어린아이 같다고 하시는지 아시지요.?(...)
공작이 내린 알렉산드라의 얼굴에 나타난 그늘, 그 슬픔일 수도 있고 우수일수도 있는 ‘그늘’이 인생의 길에서 중요한 것을 내포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를 흰 그늘이라고 평했던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奎선생이 충남 연산에서 활동했던 김일부 선생에게 내린 수수께끼 같은 화두다.
“그늘이 우주의 핵을 바꾼다.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
그늘은 어느 날 어느 순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늘은 수많은 고뇌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하루아침이나 몇 년 동안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일생동안 짊어지고 갈 멍에와도 같은 그늘, 즉 憂愁가
인생을 결정짓기도 하는 것이다.
보들레르는 들라크루아의 대화를 보면서 그의 특별한 천진성과 순박함을 갈파하기도 하였다.
“한 번은 공식석상에서 내가 그에게 우수적憂秀的인 성격의 독특한 미美를 갖춘 한 여인의 얼굴을 가리켰던 일을 기억한다. 그는 그와 같은 미를 음미하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말에 대답하기 위해 짤막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한 여자가 우수적일 수 있기를 바랍니까?” 이 말로 그는 우수의 감정을 알기에는 여인에게 “어떤 중요한 점‘이 결여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점은 불행하게도 아주 모독적인 이론이었다.”
뮈시킨 공작의 사람에 대한 평가를 더 보자.
“이렇게 해서 시험이 끝났군요.“부인이 소리쳤다.
(...)
한데 공작이 내 얼굴에 대해 평을 내리신 것은 모두가 사실이에요. 나는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그걸 알아요. 나는 공작이 그렇게 말씀하시기 전부터 그걸 알았어요. 공작은 나의 생각을 한 마디로 표현하셨던 거예요. 공작의 성격은 나하고 들어맞는다고 봐요. 너무 기뻐요. 우리는 꼭 쌍둥이 같아요. 다만 공작은 남자고 나는 여자인데다가 스위스에 가보지 못한 게 다를 뿐이에요.“(...)
하지만 공작, 어째서 아글라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지요? 아글라야가 궁금해 하고 있어요. 그리고 나도요.“
“난 할 말이 아무 것도 없어요.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왜지요? 너무 튀기 때문인가요?”
“네 그래요. 너무 두드러져요. 아글라야, 당신은 기가 막힌 미인입니다. 당신은 너무 아름다워서 보기조차 두려울 정도입니다.”
“그것뿐인가요? 다른 특성은 없나요.”
장군 부인이 성화를 했다.
“아름다움은 판단하기 어려워요.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아름다움이란 수수께끼예요”
수수께끼와 같은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을 찾아서 헤매다가 가는 것이
모든 인간들의 정해진 길이고, 그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길에 만나는 것이 우수일지도 모른다.
일찍이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정신은 항상 우수에 싸여 있어서 아무래도 비관을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늘이 우주의 핵심이고, 그늘이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
“신성하고도 영원한 우수憂愁, 어느 선택받은 영혼이 한 번 그것을 맛보고 그 맛을 알게 되면 그 뒤로는 그것을 절대로 값싼 만족과 바꾸려 들지 않는 그 우수가 아직은 불분명한 첫 감각을 불러일으킬 줄 알았던 것이다. 우수는 과거에 존재했거나, 혹은 어느 미래의 어느 시점에 존재해 주었으면 하는 것, 그 때문에 끊임없이 사람을 고통스럽게, 우울하게 만드는 정서적 운동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악령>에서 말하고 있는데,
나는 오늘 가은과 괴산을 거닐며 어떤 감성에 사로잡힐 것인지.
병신년 유월 열여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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